엘리스 피터스, 《에이턴 숲의 은둔자》
움베르토 에코가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애거사 크리스티보다도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세계적인 추리소설작가 엘리스 피터스가 예순 살이 넘어서 쓰기 시작한, 12세기 잉글랜드 서부 슈롭셔 지역(여기가 그녀의 고향이라고 한다)의 슈루즈베리에 위치한 베네딕토회 수사 캐드펠의 활약을 중심으로 하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그런데 나는 엘리스 피터스라는 작가도, 그가 쓴 “캐드펠 수사 시리즈”도 몰랐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누군가 시리즈에 대해 쓴 글을 읽었고, 나는 끌렸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책장에 두었다 읽었다. 시리즈의 열네 번째 소설이다(왜 내 책장에 둔 게 시리즈의 열네 번째와 스무 번째의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왜 이런 소설을 몰랐을까?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고 해도 모르는 책들이, 그것도 좋은 책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도망친 농노를 잡으러 온 다른 지역의 영주가 살해당하고, 지역의 영주가 된 열 살 된 소년이 지내던 수도원에서 사라진다. 유력한 살인 용의자는 얼마 전 숲의 외딴집을 짓고 은둔하는 은자의 심부름을 하는 청년. 그는 도망친 농노였고,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사라졌다. 누구라도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소년은 청년에게 그를 잡으러 영주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고는 사라졌다. 영지를 넓히고자 정략 결혼을 종용하는 할머니에게 붙잡힌 것 같지만 증거도 없고, 아무리 찾아도 없다. 소년은 또 왜 사라졌을까?
모든 것을 모호하게 해두고, 별로 증거도 독자와 공유하지 않은 채 마지막에 가서야 짠!하고 이러했던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하급의 기술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암시를 주고도 궁금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최상급 작가의 솜씨다. 이 소설은... 제목만 봐도, 이 사건의 중심에 바로 그 은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궁금하다. 분명 이 은둔자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게 분명한데, 과연 그 증거를 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앞에서 놓치고 가는 것은 없을까? 이 사건들은,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독자는 궁금증에 서둘러 읽지만,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사건은 해결된다. 아니, 해결된다기보다 전모가 밝혀진다(당연히 숲의 은둔자가 사건의 핵심이다). 아니, 모든 게 밝혀졌다기보다 굳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파악된다. 그것도 모든 이들에게 낱낱이 밝혀지는 게 아니라 캐드펠 수사와 지역의 행정 장관 휴에게만 그렇다. 추리소설의 마지막에 갖는 미덕이 굳이 모든 것이 환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조금은 뿌옇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12세기를 무대로 한다. 그래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전개는 현대적이다. 에코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