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rick Coffey, 《루이스는 왜 노벨상을 못 받았을까?》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루이스는 길버트 루이스다. 가만히 수십 년 고등학교 시절의 화학을 떠올려보면 그의 이름이 스쳐간다. 전자쌍과 공유결합이 그의 이름이 나란히 놓인다. 과학자들의 업적을 어느 교육 단계의 교과서에 소개되느냐를 두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근거하면 루이스는 굉장히 뛰어난, 보편적인 업적을 남긴 과학자다. 그 정도 업적이라면 노벨상을 받고도 남을 것 같은데, 이 책의 제목을 보면 그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단다(이와 더불어 내가 잘 아는 분야에서 그와 비슷하게 노벨상을 받지 못한 뛰어난 과학자들을 몇 명 떠올린다). 그 이유가 뭘까?
그런데 이 책은 길버트 루이스가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이유를 낱낱이 까발리기 위해서 쓴 책은 아니다 원제부터가 그렇다. “Cathedrals of Science”, 즉 “과학의 대성전”이다. 물론 이 제목도 이 책을 제대로 설명하진 못한다. 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화학, 그것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화학, 특히 물리화학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부제인 “The Personalities and Rivals That Made Modern Chemistry”가 이 책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잘 알려준다(부제의 역할이 그런 것이긴 하다).
물리화학은 말 그대로 화학과 물리학을 연결하는 분야다. 화학 반응과 물질의 결합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물리학적 방법론에 기초해서 연구하는 분야다. 1900년대 초반에 특히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 물리화학의 발전에 공헌한 화학자들과 그들의 업적, 그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물리화학에서도 ‘해리 이론, 열역학, 표면화학, 화학 결합, 단백질 구조’와 같은 다섯 분야를 다룬다고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하는데, 이 분야가 이 시기에 서로 엇물리면서 눈부신 성장을 했다. 우리가 고등학교 화학 교과서에서 배우는 화학 결합과 화학 반응의 기초가 이 시기에 닦여졌다.
저자는 6명의 과학자(화학자)를 중심 인물로 선택했다. 스반테 아레니우스, 발터 네른스트, 길버트 루이스, 어빙 랭뮤어, 프리츠 하버, 라이너스 폴링. 이들 말고도 정말 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는 아인슈타인이나 보어 같은 아주 유명한 과학자들도 있지만, 들어보지 못한 과학자들도 있다. 이 많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지금의 과학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말 번역본 제목처럼 루이스를 다룬 분량이 가장 많고, 그가 왜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지(그를 제외한 다섯 명은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건 이 책의 양념과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화학의 여러 분야가 어떻게 형성되고 성장했는지를 과학자들의 삶과 이론을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이 책에서 가장 신경 쓰면서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하나는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우선권에 관한 논쟁이다.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는 지금도 보통의 과학자들 사이에 첨예한 사안이지만, 그때도 그랬던 것이다. 바로 그 우선권이 노벨상을 비롯한 명예와 과학계에서의 인정, 자리가 모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서로 간의 비난과 질투가 난무하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우선권뿐만 아니라, 과학의 업적을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증거 없이 가설로 제시한 과학자와 그것을 실험으로 입증한 과학자, 그리고 정교한 이론으로 만든 과학자 중에 누가 그 업적에 대해 가장 큰 공헌을 인정받아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거의 그때그때 달랐다.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그것을 내세우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과학자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려졌던 것이다. 혹은 개인적인 친소 관게에 따라서도 달랐다. 루이스는 바로 이런 우선권 문제와 과학적 업적의 인정 문제 때문에 41번이나 추천받았음에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저자는 본다. 그의 고립적인 성격과 학문 태도도 포함해서).
과학적 논쟁이 지금에 봤을 때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 보이고, 잘못된 이론을 내세우는 과학자가 아집이 있다고 여겨지지만 당시에 알려진 것을 바탕으로 했을 때는 달리 보아야 한다는 것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주요 지점이다. 단백질 구조를 두고 라이너스 폴링과 격한 논쟁을 벌였던 도로시 린치의 경우를 보면, 그녀는 수학자였으니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서 사이클롤 이론이라고 하는 잘못된 이론을 죽을 때까지 고수한 잘못된 과학자로 볼 수 있으나 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폴리펩타이드 이론을 내세운 라이너스 폴링도 틀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과학에서도 승자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편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가 된 과학자가 다른 분야로 진입했을 때, 자신이 성공한 분야의 설명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한 사례들도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아레니우스가 해리 이론을 가지고 면역 병리를 해석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 이뤄져 온 성과들에 대해 온전한 이해 없이, 존중 없이 자신의 성공만을 기준으로 진출했던 분야에서 실패를 맛볼 수밖 없었다. 그 밖에도 나치 정권 아래에서의 과학자들의 다양한 모습들, ‘병적 과학’의 아슬아슬함에 대해서도 놓칠 수 없는 이 책의 내용이다.
신나게 읽었다. 화학에 관해서 고등학교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과학의 이론이 어떻게 생겨나서 검증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승인되는 과정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과학자들의 일화까지도. 과학, 화학의 대전당 안에서 그런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