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스케일, 삼체

류츠신, 《삼체 3부. 사신의 영생》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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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3부》, <사신의 영생>의 원제는 “죽음의 끝(Death’s End)”다. 왜 ‘죽음의 끝’이라 했는지, 왜 그걸 ‘사신의 영생’이라고 바꿨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태양계 인류의 종말이 있지만, 그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1부가 지구에서 드디어 삼체 문명을 인지하는 단계의 이야기, 2부가 삼체 문명의 위협에 맞선 지구 인류의 처절함을 담은 이야기라면, 3부는 1, 2부보다 스케일이 커졌다. 겨우(?) 4광년 떨어진 삼체 문명을 넘어서 전 우주 차원, 그리고 억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다.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을 동원했다고 볼 수 있다. 1부에서는 2부를 기대케 하는 무언가를 남기며 끝났지만, 사실 2부는 너무나도 완결성을 지닌 맺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3부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갈지 정말로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2부는 기만을 통해, 그리고 위협을 통해 ‘암흑의 숲’ 제어기를 손에 넣은 뤄지로 인해 지구 문명과 삼체 문명 사이에 평화가 유지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3부는 바로 그 ‘검잡이’ 뤄지가 그 역할을 놓게 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책의 시작은 15세기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의 멸망 얘기에서 시작한다. 무엇을 암시하는지 분명하다).


뤄지에 이어 검잡이가 되는 이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 청신이다. 그녀가 3부의 주인공인 셈이다. 그를 흠모했던 사내(윈톈밍)는 안락사 직전 먼 별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하지만 사내는 죽는 대신 뇌만 먼 우주로 보내지는 임무를 수락한다. 삼체 문명에게 포획되어 그 문명 속에서 살아갈 것을 기대하면서.


한편 청신은 평화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성격으로 검잡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검잡이의 역할을 인계받자마자 삼체 세계는 공격을 재개하고, 지구 문명은 삼체 문명의 속국과 같은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야기는 차원 공격을 발견한, 겨우 살아남은 우주 함대 덕분에 지구 문명이 살아나고, 그렇게 살아난 지구 문명(이제는 태양계 문명)이 또 다른 문명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완전히 파괴되는 지경에 다다른다. 여기에도 청신의 잘못된 판단이 계기가 된다. 놀라운 것은, 우주의 공격을 어떤 무기로 상정한 것이 아니라, 차원 축소(3차원에서 2차원으로)에 의한 것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또한 거기서 살아나는 방법은 광속으로 탈출하는 방법뿐인데, 그걸 공간 곡률을 이용해서 달성했다는 설정도 지극히 물리학적이다.


결국 태양계는 파괴된다. 청신과 몇 명만 살아남아 우주의 끝으로 긴 시간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세상의 종말과 새로운 희망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을 것이 분명할 정도로 ‘끝’까지 간 이야기다.


소설은 한 사람의 도덕적인 선택이 문명 전체의 운명을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잊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위로하거나 잘못이 아니라고 해준다. 하지만 어떻게 보아도, 그녀의 선택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류츠신이 역사를 보는 관점을 얼핏 엿볼 수 있다. 예원제에서 장베이하이, 뤄신, 청신 등 각 단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이 이 어마어마한 역사를 좌지우지한다. 반명 수십 억에 달하는 인물들은 그에 따라 우왕좌왕한다.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역사를 바꾸기 위해 애쓰는 인물은 많지가 않다.


《삼체 3부》는 엄청난 스케일로 《삼체》의 대단원을 그 명성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인류의 문명을 단지 지구를 넘어서 태양계, 그리고 태양계를 넘어서서 우주의 끝, 시간도 몇 억 년을 건너뛴다. 과감하지 않으면, 자신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이야기다. 그렇게, 어찌보면 황당하게 시공간을 확장시키면서도,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또 황당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건 류츠신의 과학, 특히 물리학이 단단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체 문명이 인류의 기초물리학의 발전을 저지시켰다는 설정은 정말 기가 막히다. 지금의 물리학만을 가지고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 주일간의 《삼체》 앓이는 이렇게 끝냈다.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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