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스 베이저의『모래로 만든 세계』
책장을 펴면서 처음 한 생각은, 모래에 관해서 얼마나 할 얘기가 있을까? 그런 것이었다. 모래는, 상상하면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그런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의 세계가 얼마나 모래에 빚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의심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우선 우리의 현대는 모래에 무척 많이 빚지고 있다. 지금 밖을 쳐다보면 아파트 숲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도시는 모두 모래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콘크리트 숲이라고 하여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성격을 떠올리지만, 콘크리트는 그게 현대의 건축에 도입될 즈음(물론 벽돌공 등으로부터 큰 반대를 뚫고) “경이롭고, 진보를 상징하고, 인간의 드높은 야망을 실현시켜줄 필수 재료로” (59쪽) 여겨졌었다. 심지어 라이트의 구겐하임 박물관, 발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 르코르뷔지에의 국제주의, 리처드 노이트라의 모더니즘을 보더라도 큰크리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예술적 건축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야말로 도시의 건물은 모래가 주성분인 콘크리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거기에 도로도 그렇다. 모래와 자갈로 된 도로는(그게 아스팔트든 콘크리트 도로든) 수많은 현대인의 “주거지와 주거 방식, 일터와 일하는 방식, 가치관, 그리고 먹는 음식의 종류마저도 결정”했다(71쪽). 우리의 이동성이 바로 모래로 된 도로에서 결정되었고, 그 이동성은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것 뿐인가. 모래로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먼저 떠올렸던 유리와 도기. 유리 자체도 그렇지만, 그 유리로 만든 안경, 망원경, 현미경은 어떤가? 내가 쓰고 있는 이 안경이 아니었다면 나는 책을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안경이 발명되면서 지식 노동자의 활동 기간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으며, 따라서 유럽의 지식계가 급부상했다. 거기에 진짜 현대. 바로 반도체 칩이 있다. “반도체 칩은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인공물 중의 하나이지만, 반도체 칩을 만드는 재료는 지구에서 가장 흔한 물질인 모래이다.” (146쪽) 모래는 현대를 만들어냈다.
미국의 최근 경제 호황을 이끈 것 중의 하나가 셰일 석유라고 한다. 그 존재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 얻어내는 데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던 셰일 석유가 경제성을 띠게 된 결정적인 게 수압파쇄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압파쇄법에는 모래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2008년 수압파쇄법이 본격 도입되면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를 제치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다. 역시 모래가 만든 현대다.
더군다나 “모래는 다른 자원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 (177쪽)
그러나 그렇게 현대를 만들어낸 모래가 이제 점점 부족해져 간다. 모래가 부족해질 거라고는 거의 상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고, 특히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콘크리트로 된 건물, 모래가 들어가는 도로, 반도체 칩, 그 밖에 모래가 필요한 수많은 도구와 물건들로 모래는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그 모래를 둘러싼 이권 다툼, 또는 모래를 지키려는 사람과 그것을 획득하려는 사람 사이에 폭력이 오가고 살인까지 저질러지고 있다. 해변에 모래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찾는 해변을 위해 다른 해변에서 모래를 실어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모래를 맘껏 쓸 수 있다는 것은 이전 얘기가 되었고, 모래를 구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될 때가 머지 않았다.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지고 있다.”
물론 모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모래의 문제는 다른 자원과 거의 비슷한 궤를 그리고 있는 문제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모래를 사용하지 않는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얘기다. 어떻게 적정 지점을 찾을 것인가가 문제이고, 그 적정 지점을 위해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