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운, 《돈으로 읽는 세계사》
역사를 특정한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소 역사를 좁게 바라볼 우려가 없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일관되게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유용하기도 하고, 역사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하는 건 옳지만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한 분야를 통해서 역사를 본다고 총체적 이해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경제학자들이, 혹은 이러저런 저자들이 많이 하는 일이다. 그만큼 경제는 역사에 커다란 영향, 아니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단 얘기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누구라도 경제가 보이는 듯하다. <매일경제신문>에서 일하는 이가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면 더더욱 경제를 통해서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특별하달 것 없는 문제의식이라면 문제는 얼마나 흥미로운 글감을 발굴해서 일관되게, 의미 있게 이것을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강영운의 《돈으로 읽는 세계사》에서 쓰고 있는 얘기들은 어쩌면 익숙한 것들이 많은데, 들여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구나, 좀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이를테면 베네치아가 굉장히 실용적인 태도로 중세 이후의 강자가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금융 혁신(공채를 최초로 발행)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몰랐던 얘기다. 시인 바이런의 죽음에 대한 추모 열기로 그리스 독립 채권이 인기를 끌고 그리스 독립까지 이어졌다는 얘기나, 여기에 편승해서 남아메리카의 시몬 볼리바르가 라틴아메리카 독립 채권을 발행했다는 것은,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처음 알게 된 얘기다.
그런 얘기들은 물론 재미라든가, 생소함으로 (나를 비롯한)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게 사실이지만, 강영운은 매우 세심하게 글들을 배치하고 있다. 내용별로 다섯 개로 나누었는데, 그것들이 하나의 주제를 이루고 있어 나름대로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경제-역사의 콜라보 이해에 접근한다.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생존을 위한 행위가 경제가 되고, 역사가 된 얘기들,
아메리카에서 들어오는 은으로 부국이 되었지만, 그것에 취해 오히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 스페인 얘기와 같은 역설적인 상황에 관한 얘기들,
프랑스의 콜베르, 영국의 케인스, 오스트리아의 하이에크, (소득세를 처음 도입한) 영국의 윌리엄 피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으로 유명한 그레셤과 같은 유명학 경제학자, 혹은 경제의 거물들에 관한 얘기들,
프랑스의 미시시피 회사, 영국의 남해회사,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 등과 같은 거품의 역사 얘기들,
그리고 경제, 그리고 역사를 바꾼 음식과 관련한 얘기들.
좀 더 바란다면, 이 다섯 주제의 얘기들이 더 많은 얘기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이 되었다면 보다 밀도 있고, 주제 의식 충만했을 터이지만, 그래도 이처럼 나눠 읽으면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경제-역사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책에서 가장 뜻밖의 역사를 고르자면, 버터가 종교개혁으로 이어진 이야기다. 중세 시대의 교황청이 사순절, 축일 등에 육식은 물론 유제품을 금지했던 데서 시작한 이야기다. 알프스를 기준으로 남쪽은 육식이나 유제품이 없더라도 해산물이나 올리브와 같이 먹을 것이 충분했지만, 북쪽은 그렇지 못했다. 버터를 먹어야만 했던 알프스 북쪽의 사람들에 대해 교황청이 준 기회는 면죄부(요새는 면벌부가 맞다고 하던데...)였다. 바로 마르틴 루터가 강력하게 비판하면 등장하게 된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종교개혁이 비롯되었다는 얘기다. 물론 버터가 중심은 아닐 것이다(그렇게만 받아들이면 역사를 너무 파편적으로 이해하는 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버터도 이 이야기에 한몫한다는 얘기다. 무엇이든 역사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현재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교훈도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