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대웅, 《연구소의 승리》
“이것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지킬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1969년 미국의 국립가속기연구소(지금의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던 로버트 윌슨이 의회 청문회에 나와 가속기 건설이 미국의 안보에, 소련과의 경쟁에 무슨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 답한 말이다. 이 말은 과학의 가치를 옹호하는 데 자주 인용된다. 당장의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서. 그게 아니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과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그가 “가치가 없다”면서도 끝내 고수해 낸 국립가속기연구소의 연구비는 훗날 그 연구비를 훨씬 뛰어넘는 효과로 ‘가치’를 증명해 냈다.
사회학을 전공하였지만(그러나 사회학을 전공하였기에) 기초과학연구소(IBS)에서 연구 정책을 맡고 있는 배대웅이 쓴 《연구소의 승리》는 ‘과학’이란 무엇이고,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기존에 대체로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생계를 위한 일을 할 필요는 없는 ‘신사’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의 과학이, 19세기에 들어서는 전문적인 과학자가 등장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체로는 그건 개인적인 일이었고, 연구 도구라든가 재료 등을 개인이 마련해서 수행했다. 대학의 교수들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과학이 국가의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배대웅은 바로 그런 연구소(정확히는 국가가 주도해서 만든 연구소에 해당한다)의 시작과 발전, 그리고 현재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성공의 조건들을 추려내고 있다(바로 리더십과 자율성!).
저자가 다루고 있는 연구소는 제국물리기술연구소에서 카이저빌헬름협회로, 그리고 막스플랑크협회로 이름을 바꾼 독일의 연구소, 맨해튼 계획과 관련이 있는 미국의 (로런스)버글리연구소와 로스앨러모스연구소,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와 우주개발과 관련이 있는 항공우주국(NASA), 그리고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와 미국 국립과학재단, 일본의 이화학연구소(흔히 ‘리켄’이라고 불리는), 미국으로 넘어갔던 물리학의 중심을 다소 유럽으로 이끌어낸 유럽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이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나라의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도 다루고 있다.
어떤 한 기관을 쭉 다루지도 않고, 대체로 시기별로 다루고는 있지만 완전히 그렇게 줄 세우고 있지도 않다. 그 의도는 짐작할 만하다. 어느 정도는 각 주요 연구소의 시기별 변화와 개혁을 보여주면서, 그런 연구소들이 전체적으로 시대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부흥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연구소를 만들고 지원했던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전쟁 시기에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전적으로 복무해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지식 자체를 위해서도 존재했고, 또 감염병의 위기, 기후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소의 목적으로 다시 세워야 하는 시기가 오기도 했다. 이런 연구소의 변화와 대응을 보여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모습이 보인다.
그런 최선을 다해서 소개해 준 덕분에 최소한 미국, 유럽(특히 독일), 일본에서의 과학의 발전에서 연구소가 차지한 역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그게 과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책이 그렇지만 몇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연구소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한계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못한 것이나, 그와 관련지어 작은 규모의 연구 그룹, 또는 개인 연구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과학 발전에서 한쪽 면만을 부각한 것은 아쉽다. 당연히 모든 것을 작은 책 한 권에 담는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위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조사하고 쓴 것이 뻔히 보이기에 쉽게 비판하지 못한다. 그래서 바람도 가져본다. 저자든, 아니면 다른 분이든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특히 우리나라의 과학 발전과 관련해서 보다 본격적으로 분석한 글이 나왔으면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