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적과 흑 1, 2》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적과 흑’은 군복의 붉은색과 승복의 검은색을 의미한다. 주인공 쥘리앵 소렐이 열망했던 두 개의 직업이 바로 군인과 사제였다. 그리고 그 색깔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대변하는 두 세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는 붉은 군복의 자유주의자와 검은색 사제복은 입은 성직자로 대표되는 왕정복고주의자가. 스탕달은 《적과 흑》이란 소설을 통해 쥘리앵 소렐을 중심에 두고, 당시 프랑스의 사회에서 대립하는 두 세력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쥘리앵은 비천한 출신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외모를 지녔고, 비상한 기억력을 뽐냈으며, 행동력까지도 뛰어났다. 자존심이 가득 차 있었고, 거기에 도도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인물로 그려졌다. 불과 20세 안팎의 나이에. 하지만 시골의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나아가 출세할 수 있는 길은 거의 막혀 있었다. 그런 그가, 지방 소도시의 시장이나 부자인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출신 계급을 뛰어넘어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가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그것에 더해 그런 능력에 걸맞는 지위를 갈구하자 귀족 계급의 사람들은 경계한다. 의장대원으로 뽑혀 맵시를 뽐내도, 파리에 입성해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도 그의 능력을 이용하려고는 하지만, 그가 신분을 뛰어넘는 지위를 주는 것을 꺼렸고, 그를 위험시하기까지 한다. 쥘리앵에게 파리는 스며들지 못하는 곳이었다(“파리에서 당신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2권 69쪽).
이런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은 인물이 (그가 보기에) 나폴레옹이었다. 쥘리앵은 당연히 나폴레옹을 “민중이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왕이여!”(1권 312쪽)이라면 흠모하고, 그의 시대를 그리워한다. 왕정주의자, 복고주의자들은 나폴레옹이나 로베스피에르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날까봐 두려워하고 그 싹을 자르기에 골몰한다. 그게 바로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망명해 있던 귀족들이 돌아와 다시 권력을 잡고 특권을 누리던 시대, 1830년대의 프랑스라는 것을 스탕달은 폭로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상류사회는 권태스럽고, 지극히 속물스러웠다는 것도 함께.
쥘리앵의 몰락은 물론 여인들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는 출세를 위해서, 혹은 어쩔 수 없는 감정으로 여인들을 유혹하기도 하고,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스탕달이 쓴 《적과 흑》은 분명 당대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사회 소설이지만, 또한 지극히 통속적으로도 읽히는 연애 소설이기도 하다. 쥘리앵과 레날 부인, 마틸드와의 관계는 수도 없이 뒤집히는 감정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들의 연애담은 사건 중심이라기보다는 심리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람이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의 복잡함을 이토록 끈질기게 묘사한 소설이 19세기에 존재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좋아했다, 순식간에 싫증을 느끼고, 미워하고, 동정하고, 다시 좋아하고, 헤어짐을 선언했다, 다시 만나고 하는 장면들은 때로는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복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게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이 일관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신화 같은 게 아닌가.
스탕달은 1828년과 1829년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사제가 되고자 했던 청년이 가정교사로 채용되었다가 그 집안 부인이 호의를 보이자 남편에 의해 해고되고, 이후 다른 귀족 집안에 역시 가정교사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귀족의 딸과의 관계를 의심받아 다시 해고된다. 이게 이전 집안의 부인이 보낸 편지 때문이라고 여긴 청년은 교회에서 부인을 저격하고 사형을 선고를 받아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또 다른 사건은 역시 가난한 청년이 애인이 변심하자 애인을 죽이고 목을 잘랐는데, 이 청년은 사형당하지는 않는다. 스탕달은 이 통속적인 사건들을 소재로 삼아 시대를 그려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