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는 하나의 바다가 아니다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I_환경의 역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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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그러나 역사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소문만 듣다 드디어는 읽기 시작한다.


페르낭 브로델. ‘신(新)역사학의 교황’이라 불리는 역사학자. 아날 학파의 대부. 그의 명성이 시작된 지점이 바로 ㅊ다.


1949년에 초판이 출판되었고, 이후로도 개정판이 여러 차례 나왔다. 이 책은 원래는 브로델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계획했던 것이라 한다. 많은 자료를 모았는데, 쓰기 시작할 무렵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참전했던 그는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한다. 그러나 (내 짐작과는 달리) 포로수용소의 조건은 그렇게 팍팍하지 않았는지, 브로델은 오로지 기억의 의거해서 집필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주고 받기도 했고, 지도교수인 뤼시앵 페브르에게 논문 일부를 보내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한다. 전쟁이 끝나고 인용한 자료의 정확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고, 1947년에 논문을 발표하고, 1949년에 출판하게 되었다.


브로델은 프랑스에서도 지중해와는 먼 지역, 그러니까 북부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쩌면 지중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나 감성에 바탕을 두었다기보다는 철저히 이성에 의거해서 이 책을 쓸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I부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지중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전 유럽적인, 나아가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포로 생활을 하면서 역사에 대한 성찰을 깊게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사건’이 사회나 문명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커다란 흐름에 보다 집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관점은 《지중해》에 오롯이 담겼다. 즉, 가장 바탕에 거의 움직임이 없는 지리적 환경을 파악하고, 그 위에 느리게 움직이는 인간 집단 활동, 즉 오랜 시간에 걸친 사회적, 경제적 활동, 국가의 형성과 소멸 등을 다룬다. 그리고 그 위에 ‘개별적 시간’을 두고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제I부는 이 중에서도 ‘환경의 역할’, 즉 가장 역사를 이해하는 가장 바탕이 되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이를 제II부 첫머리에서 “반복, 느림, 영속성”으로 특징짓는다).


펠리페 2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아들이다. 카를 5세는 자신의 제국의 절반, 즉 독일-동유럽의 영토는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물려주고, 아들 펠리페 2세에게는 에스파니아와 부속 영토,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을 물려주었다. 펠리페 2세의 치세는 1556년부터 1598년으로 거의 16세기 후반과 일치한다. 페르낭 브로델이 다루는 시기의 중심이다(그러나 브로델은 이 시기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앞 시대, 그리고 그 뒷 시대도 함께 알아야만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이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역사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이 남아 있지만, 조금씩 활력을 잃어가는 지중해 시대에 대한 보고가 바로 이 책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시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더 깊은 것을 파악하는 데,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저물어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앞서 얘기했듯이, 제I부는 ‘환경의 역할’을 다룬다. “지중해는 하나의 바다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I부는 지중해를 이루는 반도, 고원, 평야의 특성을 이야기하고, 여러 바다, 연안 지대, 섬들을 다룬다. 그리고 지중해를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를 넓혀 대(大)지중해라는 개념을 들여와 북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아랍 지역까지를 포함시킨다. 다시 지중해의 범위를 좁혀(올리브 과수원의 북방 한계선과 야자수 과수원의 북방 한계선 사이) 자연의 단일성과 인적 단일성을 다루는 것으로 지중해의 역사를 이해하는 배경을 완성시키고 있다.


인상 깊은 대목 하나.

“지중해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이중고, 곧 빈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어쩌면 이 이중고 때문에 지중해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검약하고, 부지런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이중고가 동기가 되어서 지중해 나라들은 특정한 방식의 제국주의―거의 본능적으로, 때로는 그저 일용할 빵을 찾아나서는 것에 불과한―를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지중해는 내재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해야 했고, 외국으로 나가야 했고, 먼 나라들의 협력을 구해야 했고, 그곳의 경제와 연결되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지중해의 역ㅎ사는 더욱 확장되었다.” (320쪽)


이 대목은 “이슬람의 궁극적인 취약점은 자신의 성공에 갇혔다는 것, 즉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는 확신에 안주한 것, 다시 말하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했고 따라서 다른 해답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243쪽)의 댓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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