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III》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 제III부는 부제가 얘기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사건과 정치, 그리고 인간을 다룬다. 중심은 물론 사건이다. 여기에 와서는 16세기의 앞과 뒤, 그러니까 다른 시기의 이야기들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16세기, 그것도 펠리페 2세의 시기, 즉 1550년부터 16세기 후반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 시기의 사건은 주로 전쟁이거나 전쟁의 종결이다.
여느 시기처럼 전쟁이 있었다. 이 시기의 전쟁은 주로 기독교 진영과 투르크과의 대결, 기독교 진영 내에서도 가톨릭 진영과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대결,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대결, 대국과 도시국가 사이의 갈등과 흡수 등등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지럽다. 페르낭 브로델이 사건은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이러한 어지러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각각의 소리들이 울리는 음악과 같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방금 얘기했듯이 페르낭 브로델의 개별적 사건보다는 전체적인 구조, 즉 장기간의 변하지 않는, 혹은 느리게 변하는 흐름이 중요하다고 한다(그는 스스로 ‘구조주의자’를 자처한다). 책 전체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레판토 해전을 두고 “사건사의 한계”(246쪽)를 언급하고, “다른 역사가들과는 달리 나는 1572년 8월 24일(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사건)이 세기의 대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278쪽) 단언하거나, 펠리페 2세의 죽음을 두고 “이 모든 것이 1598년 9월에 끝난 긴 임종의 고통이 지중해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없”(439쪽)다고 할 때 명확히 드러나기도 한다. 그는 사건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를 보자고 한다.
그래서 페르낭 브로델의 책은 그다지 재미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이 반짝거리는 먼지들이 가치가 없다거나, 미시사로부터 출발하여 전체사를 재구성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448쪽)고는 하지만, 선명하지 않은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오로지 미시사, 혹은 사건들에 집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나마 이 제III권이 가장 읽기에 편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역사학도가 아닌 입장에서, 그저 평범한 독자에서 지금까지 역사 읽기에 가장 근접한 내용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페르낭 브로델은 개별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이야기하는 데도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미 독자들이 그 내용은 대충 알 것이라는 전제 아래서 이야기하는 ‘불친절함’을 감행하고 있다. 특히 제목을 보고 반가워했던 ‘레판토 해전’의 부분이 그렇다. 레판토 해전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여러 세력의 지리한 줄다리기, 그리고 그 해전(그러니까 기독교 진영의 승리) 이후 무엇도 별로 변하지 않은 정세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하고 있지 (대표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처럼) 레판토 해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흥미진진하게 서술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그냥 전쟁이 벌어졌고, 결과는 이렇다는 몇 줄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놀라면서 밑줄을 긋는다. 그것은 이슬람 세력에 대한 유럽 기독교 세력의 승리의 결정적 국면이라는 평가를 받는(페르낭 브로델도 “16세기에 지중해에서 벌어진 군사적 사건들 가운데 가장 울림이 큰 사건”이라고 시작하기는 한다) 레판토 해전이 단지 “투르크의 마법이 깨지고”, 기독교 측의 “매우 암울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미래를 바꾸어놓”은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없는” 해전이었다고 아주 길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볼테르도 이렇게 비웃었다 한다). 세계사에 대한 보편적 시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리고 이 III권에서는 드디어 에스파냐 제국의 펠리페 2세가 주인공처럼 다루어진다. ‘신중왕’ 펠리페 2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이 인물을 누가 다루는지에 따라 매우 달리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페르낭 브로델의 최종 평가도 흥미롭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국왕의 역할을 하는 군주였다. 그는 서로 교차하는 씨줄과 날줄로 세계와 제국이라는 캔버스를 짜듯이, 끊임없이 보고들이 교차하는 네거리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세계의 모든 지평선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소식들을 통해서 살아 있는 역사에 연결되어 있었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생각에 잠긴 채 집무실 책상에서 보고서들을 건토하고 속필로 메모를 남기는 독서가였다. 사실 그는 제국의 종합과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438쪽)
1965년 이 책을 개정하면서 페르낭 브로델은 기존의 시각(지금의 시각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과는 달리 지중해 시대의 쇠퇴를 매우 늦추고 있다(1650년이나 1680년). 그러나 내 느낌으로는 이미 17세기가 지나면서 이미 역사는 지중해 중심으로 쓰여지기보다는 대서양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 같다. 지중해는 거기에 끝까지 저항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분명 지중해 시대의 노을을 다루고 있다. 오래 지속되었지만, 결국은 사그라들고 말 운명의 무엇.
드디어 이 노작(勞作)을 다 읽었다. 물론 모든 부분을 세밀하고 다 파악하면서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낸 나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