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그린, 《우리를 찾아줘》
SETI 프로젝트,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젝트. 칼 세이건 등의 주창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원래는 NASA가 주도했지만 1993년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중단된 것을 민간 기부를 통해 SETI 연구소가 이어받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를 찾아줘”라는 제목. 이것은 SETI 프로젝트의 ‘외계 지적 생명체’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외계 지적 생명체’에 전하는 우리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외계에 존재하는, 우리를 제외한 지적 생명체를 가정한 표현이다. 이건 우리말 제목이고, 영어로 된 원래의 제목 “The Possibility of Life”을 봐도 비슷하다. ‘Life’, 그러니까 ‘생명’은 분명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외계에 존재하는 생명, 그것도 지능을 가진 생명을 의미한다.
그렇다. (적어도 우리말 제목으로)는 기욤 뮈소의 소설 제목처럼 들리는 이 책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천문학의 얘기로 가득 차 있지도 않고, 황당무계한 가정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다. SF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통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지만, 그 상상은 천문학을 비롯한 철학, 언어학, 사회학, 인공 지능 등 ‘우리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또 그것을 뛰어넘으려 애쓰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지식 범위 안과 밖을 넘나들며 상상과 검증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확률적으로 계산한(?) 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드레이크 방정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은 방정식도 아니고, 어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걸 통해서 정말 우주에 존재하는 지적 생명체의 확률이나 숫자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여전히 이 방정식은 유효한데, 그 이유는 이 방정식의 변수가 바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들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도 이 방정식을 책의 첫머리에 두고 있으며, 명시적으로는 아니지만 방정식의 변수를 통해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드레이크 방정식은 우리가 이제부터 알아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인데, 별들이 태어나는 속도, 행성을 갖는 별들의 비율, 별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갖는 행성의 평균 개수, 그러한 행성들에서 실제 생명체가 발생한 비율, 그 생명체 중에서 지능을 갖춘 생명체가 발생한 비율, 그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우리가 검출할 수 있는 신호를 개발할 수 있는 비율, 그리고 그 신호를 방출한 생명체의 문명이 존속하는 기간. 바로 이것들을 알아야만 우리가 SETI 프로젝트를 통해서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는 이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 그 얘기는 우리는 이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아무것도’가 아니라 ‘거의 아무것도’라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그래도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애쓰고 있고,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SF라는 상상력을 통해서 발현하기도 하고, 과학을 통해서 제안되고 검증되기도 한다. 그리고 외계에 보내는 신호와 디스크 등을 통해서 시도를 하기도 한다.
제이미 그린은 이와는 별도로 몇 가지 생각할 지점을 다시 제안하고 있다. 우선은 정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 외계 생명체가 어떤 모습일지에 관한 것이다(지구의 생명체의 모습에 수렴? 아니면 어떤?). 그리고 그 외계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기술 수준에 관한 고려, 그리고 그들과 접촉했을 때의 상황 등. 우리가 생각해야 했지만, 혹은 생각해왔지만 과학에서는 많이 무시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질문들을 던지고 답하는 방식은 좀 독특하다. 많은 SF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의 단초를 생각하는 것이다. <스타 트랙>은 물론이고, 나는 거의 접하지 못했던 많은 SF 소설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던지는 질문의 수준이 과학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실제 과학자들이 쓴 SF 소설도 있다. 과학으로 담지 못하는 질문과 대답을 다른 수단을 통해서 시도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SF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별로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삼체》를 읽으며,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다시 그런 소설들이 던지는 문제제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읽다 보니, 외계 생명체에 대한 가능성이나 그 외계 생명체의 모양, 지능, 특성,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 등에 대한 상상이 실은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에 대한 사고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연구 대상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우주생물학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작은 모든 연구의 목적이 (적어도 아직은) 우리를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나이지리아계 영국인인 테이드 톰슨은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로즈워트(Rosewater》란 소설을 썼다(거의 모든 드라마, 영화, 소설이 외계인을 발견하고, 침공하고, 침략받는 게 서구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는 외계 생명체가 성간 여행이라는 엄청난 에너지를 쓰면서 지구를 왜 찾아올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것을 서구의 비서구에 대한 식민주의와 비교한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과학소설이나 판타지가 언제나 미래에 대한 건 아니다. 현재에 대한 것이고, 그리고 과거의 이야기를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 소설이나 과학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