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라일리, 《극한 생존》
‘물곰’이라고도 불리는 완보동물은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작은 동물이다. 주로 이끼 같은 것에 겨우 붙잡고 사는 매우 허약한 동물처럼 보이지만 무척이나 강인한 생명체다. “지구상에서 생명을 없애려면, 이 생명체까지 모두 죽일 수 있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고 했을 만큼 이 생명체는 웬만한 환경에서는 죽지 않는다. 물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건조한 상황에서도 살아 있을 수 있으며, 매우 높은 온도에서도(심지어 끓인 물에서도) 꽤 오래 살아남고, 매우 낮은 온도(영하 200도의 액체 헬륨에서도)에서도 몇 개월 동안 멀쩡하고, 높은 압력, 강한 방사선에서도 살아남는다. 정말 대단한 동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극한의 조건에서 살아남는 생명체는 완보동물뿐일까? 과학 작가 알렉스 라일리는 문헌 조사는 물론 100명이 넘는 과학자들과 인터뷰를 통해서 극한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고, 어떤 조건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메마른 세상에서 살아남는 완보동물, 캥커루쥐, 낙타, 킬리피시와 같은 동물에서 시작해서 산소 없이도 생존하는(혐기성세균의 얘기가 아니다) 거북 이야기로 넘어간다. 거북의 등껍질은 그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 뿐 아니라 무산소 조건에서 살아가는 데도 톡톡히 역할을 한다. 붕어도 무산소 연못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역시 신기한 일이다.
먹이 없이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익숙할 거라 생각했다. 동면의 이야기니 말이다. 그런데 동면하는 것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 그리고 동면의 방식이 여러 가지라는 것은 그렇게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다.
남극의 극저온에서 살아가는 아이스피시라든가, 북아메리카의 송장개구리, 북극 땅다람쥐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동면처럼 이들도 나름의 극저온을 이겨내는, 견뎌내는 방법을 고안해 낸 동물들이다. 진화는 놀랍기 그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극고압과 극저압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동물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에베레스트산을 넘어 이동하는 줄기러기가 있다. 그 녀석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호흡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새들이 극저압을 견딜 수 있는 동물이라면 심해에 살고있는 물고기는 극고압을 견뎌내는, 아니 이용하는 생물들이다. 바닷속 7500미터 아래에는 아무런 생물이 살 수 없을 거라는 기존의 정설을 깔끔하게 뒤집고 그보다도더 깊은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유유히 헤엄치며 살아가는 물고기가 있다. 달팽이물고기 같은 것들이다.
극고온에서 살아가는 생물과 관련해서는 PCR을 가능하게 했던 세균 얘기를 빼놓을 수 없지만(역시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그건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여기선 50도, 60도가 넘는 사막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개미 이이기가 재미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 녀석들이 왜 그런 데서 살아가느냐와 또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걸 간단히 얘기하자면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이고, 조금이라도 땅에서 높이 올라가고, 빨리 움직여 땡볕에 있는 시간을 줄이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빛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도 흥미롭지만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방사선을 견디며, 혹은 방사선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다. 여기에는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듀란스라는 세균 얘기가 당연히 나온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난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는 프르제발스키 말이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것은 어쩌면 생물들이 방사선을 먹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너무 획기적이지 않은가? 곰팡이를 비롯한 여러 생물이 그렇다는 증거가 쌓여가고 있다는데, 여기에는 멜라닌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한다. 만약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방사선에 급격하게 노출되었을 때 곰팡이를 임시 처방받는다든지 하면 된다는 얘기도 되는 것이다.
극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견뎌내는 생물들에 대한 연구는 활발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우리 삶의 조건을 확장하는 것이다. 막대한 의학적, 공학적 가치가 있는 연구가 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것을 잊을 만하면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보다는 생명의 끈질김이랄까,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더 많이 느꼈다. 우리가 이 지구를 망치고 있고, 이 추세를 멈추지 못해 지구를 끝내 망치더라도 그것은 어쩌면 (극한 조건에 별로 적합하지 않은) 우리 인간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쨌던 그런 조건에서도 생명체들은 살아남아 번성할 것이다. 이건 낙관적 생각일까, 비관적 전망일까?
결론은 이것이다.
어쨌든 “생명은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