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는 누구인가?

정기문, 《역사적 예수》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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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예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신이 가질 않는다. 말하자면 나는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로서 보고 싶은데, 그렇게 보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가 궁금하다.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에게 예수의 행적과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을 따지고 드는 것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읽기라도 하겠는가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작업은, 특히 서양에서 많이 하는 모양이다. 예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지만, 과연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은 많다는 얘기다. 흔히 그려지는 대로 예수가 긴 머리의 잘생긴 백인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지만(물론 이것도 기독교인들은 잘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다가 죽었는지에 대해서 절대적 동의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정기문 교수는 서양사에 관한 대중서도 많이 쓰고 있지만(재미있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 관한 책도 꽤 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모른다. 그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는데, 이 책을 보면 아마 아닌 것 같다. 순전히 역사학자의 관심에서 하는 일로 보인다. 이전의 책들이 성경의 역사라든가, 예수의 후계자에 관한 책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핵심을 짚고 있다. 바로 예수란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일단 이 예수에 대한 논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를 사료의 한계 때문이라고 본다. 즉 1차 사료라고는 신약성경밖에 없는데, 이 신약성경이 신앙의 관점으로 채색(그는 이런 표현을 쓰고 있지만 나는 ‘오염’이라고 본다)되어 있고, 모순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니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기문 교수는 주로 네 개의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 <루카 복음서>, <요한 복음서>를 중심에 두고 기타의 자료를 분석해서 예수란 역사적 인물에 접근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거의 모순에 관한 얘기다.

우선, 예수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언제 죽었는지부터 분명하지 않다. (나는) 이는 예수라는 인물이 당시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죽음은 나중에 그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가 아니면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기에 누구도 기록하지 않았다. 심지어 복음서마다도 그 기록이 다르다. 예수의 가족의 문제도 그렇다. 예수에게 형제가 있었나? 아마 현대 기독교인은 친형제는 부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초기 기록들은 형제의 존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그들이 예수를 탐탁치 않았던 것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어머니 마리아를 포함해서 정기문 교수는 이러한 기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다음은 예수를 따르던 무리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즉 예수가 유대인의 독립을 위한 무력 투쟁을 기도했는가의 여부다. 제자들 중에는 칼을 차고 대항하고자 했던 이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순순히 체포되고 십자가형을 받고 죽어간다. 하느님보고 왜 자기를 버리느냐 원망을 하면서. 정기문 교수는 예수는 분명 하느님이 자기를 버리지 않을 거라, 무슨 일을 할 거라 믿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정기문 교수는 제자들에 대해서도 의문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과연 12제자가 맞는지(복음서마다 제자의 수와 이름이 다르고, 대부분의 제자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왜 그들은 예수가 잡혀가자 도망쳐 숨어버렸는지 등등. 그리고 왜 굳이 제자를 12명을 맞추어 기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예수가 비판하고, 그래서 지금의 기독교인도 흘겨보는 바리사이파(바리새인?)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이야기한다. 예수(와 바울)가 바로 바리사이파였거나, 혹은 매우 좋은 관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믿은 하느님의 성격까지도 질문하고 있다. 바로 야훼라는 신이다. 이 신은 보편 신이 아니었다. 여러 신이 존재했고, 그중에서도 유대인의 신이었다. 그리고 평화의 신도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요시아의 개혁과 바빌론 유수를 거치면서 보편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신이라면 과연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기독교를 비판하고 신앙을 허물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기독교의 역사의 모순을 짚고,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해서 보다 정밀한 신앙을 유도하려는 시도라고 보고 싶다. 그냥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이 얼마나 선택적인 것인지를 이러한 연구는 잘 보여준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예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순적이고, 불분명한 존재인 예수가 정말 어떤 인물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읽고, 또 독후감을 쓰고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은, 과연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이런 책을 읽을까 하는 것이다. 모순적인 성경만 반복해서 읽는 것과 그 모순을 어떻게든 해결해보고자 하는 연구를 읽는 것. 어떤 게 신앙에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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