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테크놀로지 속에서 살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그런 막강한 힘을 느끼며 살아가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고 알게 되는 순간은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그때도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테크놀로지의 바다에서 ‘물’을 느끼지 못한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듯이(이 책에서는 여러 차례 공기(空氣)를 언급하고 있다).
다섯 파트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도시의 구성을 이야기한 두 번째 파트다. 에어컨, 전력망, 수돗물과 같은 현대의 도시를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인프라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지극히 ‘현대적’인 것이다. 이것들을 우리가 공기처럼 여기게 된 것은 불과 몇 십 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의 존재를 에어컨이 고장나거나, 정전이 되거나, 수돗물에 녹이 묻어나오거나 할 때뿐이다.
이와 거의 엇비슷하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은 첫 번째, 세 번째 파트다. 두 번째 파트가 도시의 커다란 인프라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첫 번째 파트에서는 그보다는 크기가 작은, 개별적 인프라를 이야기한다. 담배라든가, 우유, 라면, 전기밥솥, 컴퓨터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 무척이나 핫했던) 마스크까지. 역시 지극히 현대적인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우리 손에 들어올 때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지극히 무관심한 것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 파트에서는 사회의 변곡점을 찍은 현대의 이기(利器)를 이야기한다. 자동차, 라디오, 반도체, 무선호출기, 스마트폰, 그리고 인공지능. 이것들은 첫 번째 파트의 것보다는 무언가 훨씬 현대적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또한 두 번째 파트의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기보다는 우리가 이용하는 것들이다. 다만 여전히 이것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바로 그런 우리의 무심함에 대해서 환기하기를 원한다. 그것들이 우리 삶에 어떻게 들어오고,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우리 삶의 근본적인면까지 바꾸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한다. 물론 그것은 너무도 피곤한 일이다. 우리가 라면 하나를 먹으면서, 늘 이게 어떻게 일본에서 개발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어떻게 들어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라면의 사회학적, 보건학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신경쓸 수는 없다. 얼마나 피곤한 일이겠으며, 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눈 흘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서 전혀 고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이 없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네 번째 파트는 앞의 것들보다 외견상 더 큰 이야기, 그리고 커다란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원자폭탄이라든가, 성수대교 붕괴, 챌린저호 폭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세월호 침몰 같은 것들 말이다. 여전히 이것들도 현대의 발전이 가져오는 의미에 대해서 무관심해질 때 그런 사고가 오고, 또 사고에 대해 다시 무관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