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헤네시(잭 맥고언), 《만화로 보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
게임이라고는 테트리스와 지뢰찾기 말고는 별로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됐다(그래도 테트리스와 지뢰찾기는 무척 잘했다). 잘 알지 못하는 게임회사(물론 유명한 회사 몇몇은 알고 있지만), 개발자, 게임, 그리고 전문 용어들 사이를 헤맸다. 그래서 아마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겠지만, 전체적인 이해와 몇몇 세부적인 지식 정도는 내 머릿속에 담을 수 있었다.
전체적인 이해 첫째. 비디오 게임의 역사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것. 화면에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래로, 여러 괴짜, 천재들과 비즈니스맨들의 분투로 게임 산업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것으로 돈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말하자면 수익 모델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거다. 동전을 쓸어모으는 데서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가(내가?) 아주 가끔 전자오락실의 게임기에 넣었던 동전으로 이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한다. 그러다 1983년에는 거의 붕괴에 이르렀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그때가 내가 처음 전자오락실을 들어갔던 때가 아닌가? 아이러니!). 그러던 것이 지금과 같이 되었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보면, 초기에는 꽤나 철학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튜링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말하자면 컴퓨터의 역사, 혹은 인공지능의 역사와 별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가 애초에는 즐긴다는 것보다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것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상식과 같은 것이지만 그 부분을 읽을 때만큼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또한 게임의 역사에서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게임과 게임 제작의 과정을 보면 철학이라기보다는 완벽히 자본주의적이 되어 오로지 즐기고, 또 돈을 향해 질주한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했다.
다음은 몇 가지 단편적인 지식들.
첫째, 이런 대목이 있다. “그래서 비디오 게임은 그 자체가 ‘해크’였다.”
앨런 튜링의 시대에 컴퓨터를 ‘게임’에 이용하는 것 자체를 ‘이단’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앞서도 얘기한 대로 컴퓨터라는 기술은 오직 군사, 과학, 정부, 산업에 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란 것이다. 사실 인터넷 자체도 그렇다.
둘째, ‘아타리(ATARI)’라는 게임 개발 회사가 있었다. 1980년대 게임 문화의 아이콘이었다고 한다. 언뜻 이름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한 이 회사의 이름에 관한 얘기다. 바로 바둑에서 쓰는 말이다. 흔히 ‘아다리’라고 하는 것으로, 일본말에서 온 것이라 요새는 ‘단수’라는 표현을 쓴다. 미국 게임 회사가 바둑의 용어를 회사 이름에 썼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다음은 게임과는 거의 전혀 관계없는 얘기. 게임 업계가 자본주의의 논리를 완전히 수용해 간다는 대목에서 나오는 것으로 킹 캠프 질레트를 언급한다. 바로 질레트 면도기를 만든 사람이다. 이렇게 쓰고 있다.
“질레트는 ‘진짜 수익이 면도기가 아닌 ’면도날‘ 판매에 있다고 통찰할 인물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비디오 게임도 바로 이런 면도날 판매에서 얻은 아이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