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드라 마스크, 《주소 이야기》
처음 읽는 책인 줄 알았다.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무래도 주소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 들어 찾아봤더니, 3, 4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2619137752). 그런데도 세부적인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읽으면서도 그랬다. 딱 한 대목을 제외하고는.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얼마쯤이라도 기억이 났으면, 내가 책을 쓰면서 콜레라와 존 스노에 대한 얘기가 보다 풍부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독후감은 거의 새로운 책읽기의 경험으로 쓰게 된다.
디어드라 마스크는 주소에 관해, 단순히 역사적인 이야기만 하지도 않고 있고, 세계 각지의 주소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책도 아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주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심지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해서), 그 이야기들은 의미심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주소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청년들을 군대에 끌고 가기 위해서,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 나쁜 짓을 저질렀거나 지배 세력에 반기를 든 이들을 잡아내기 위해서, 혹은 효율적인 감시를 위해서 주소는 ‘발명’되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에 반발했고, 지금도 반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주소의 의미는 역사적 탄생과는 다른 의미로 중요하다. 주소는 현대인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었다. 주소가 없으면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상상할 수 있다. 가장 현대적으로 상상해보면, 네비게이션으로 어딜 찾아가질 못한다. 디어디라 마스크는 주소가 없는 이들, 이를테면 노숙자라든가, 난민 캠프 등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주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소가 없으면 취직을 못한다. 혹은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갖는 주소가 있다. 주소는 단순히 위치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집단적 기억의 수단으로 주소로서 작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디어드라 마스크는 남부 흑인 지역에 남북 전쟁 당시 남부군을 이끌었던 장군, 그것도 KKK를 이끌었던 이의 이름이 붙은 주소를 예로 들고 있으며, 혁명을 통해서 이름이 바뀌는 주소의 예도 들고 있다(러시아에서 소련으로, 그리고 다시 러시아로. 독일, 이란, 북아일랜드 등). 통합을 위해 과거의 유산인 주소를 그냥 두거나(넬슨 만델라의 경우), 그래도 바꾸는 경우(넬슨 만델라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있다.
주소는 돈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뉴욕의 맨해튼을 예로 들고 있지만, 그건 우리의 경우에 더욱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세계에 대한 인식 체계를 나타낼 수도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그런 것 같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그런가 싶은 예가 바로 우리나라의 예이다. 블록 중심의 주소 체계에서 거리 중심의 주소 체계로 바뀐 게 꽤 됐다. 우리의 세계관이 주소 체계 때문에 좀 바뀌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주소는 중요하다. 다시 읽었어도 새롭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다. 다채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