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병원에 간 과학자》
제목을 접하고, “미술관에 간 ~~~”과 같은 책은 아니라고 짐작했다.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https://blog.naver.com/kwansooko/223122378063)으로 이미 접했던 ‘과학자’였고, 그가 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려고 병원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만난 과학의 발견들”이라는 부제는 사정을 조금 짐작하게 한다. 그는 아팠다. 암이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밝혔지만, 어떤 암인지는 책 후반에 가서야 딱 한 번 지나가듯 언급한다. 신장. 과학자 김병민은 암에 걸렸고, 그래서 병원에 갔다. 그리고 썼다.
그러나 이 책은 ‘투병기’가 아니다. 어떻게 아프게 되었고, 어떤 과정의 치료를 거쳤고, 그때마다 어떤 느낌을 가졌으며, 주위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등. 물론 그런 얘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자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면서 과학을 이야기한다. 그의 표현대로 ‘연구노트’를 썼다.
크게 봐서 세 가지 과학의 이야기다.
빛에 관한 이야기, 이건 X선, CT, MRI와 같은 영상의학을 통한 진단의 이야기다.
다음은 마취, 통증에 관한 이야기. 더불어 마약과의 관련성.
그리고 암과 암 치료에 관한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순서대로이지만, 그 경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그런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또 읽을 때는 그런 구분을 하지 않았는데, 순서를 보면 ‘물리학→화학→생명과학’으로 이어진다. 이 세 과학의 분야에 의학은 모두 걸쳐 있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언급하는 것은 짧은 독후감으론 가능하지 않다.
다만 이런 얘기는 하고 싶다. 모든 과학자가 이렇게 자신의 질병과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을 연구하듯 탐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는 수준에서 판단하고, 거기서 조금 나아가서 알아본다. 물론 그 과정에서 깊이 알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내 분야, 내 수준을 넘어서는 경계 앞에서는 멈칫거리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과학자 김병민도 자신의 질병과 진단, 치료에 관한 모든 것을 탐구한 것은 아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과학자 김병민도 알고, 모든 사람이 알 것이다. 다만 알 수 있는 것, 알고 싶은 것을 깊이 있게, 원리까지 치고 들어간 것만큼만은 인정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탐구한 노트를 읽는 나는 적지 않은 내용을 새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자세다. 과학자란 모른지기..., 그런 상투적인 교훈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앎에 한계를 지우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온갖 어지러운 정보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면서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는 대신 스스로 알아간다는 것. 사실 그게 과학자의 자세이고, 현대 문명인의 자세다.
묘한 시점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