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창작자는 분리할 수 있는가?

클레어 데더러, 《괴물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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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을 읽은 감상을 본격적으로 적기 전에 제목부터 썼다. 별로 없는 일이다.

"작품과 창작자는 분리할 수 있는가? 숭배와 혐오 사이의 딜레마".

그런데 너무 의문이 든다. 이 제목은 이 책에 대해 잘 읽은 표식이 될까?


물론 이 책은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그 얘기로 시작하고 있다.

로만 폴란스키와 우디 앨런의 이야기. 천재 영화감독. 사실 나는 그들이 천재 감독이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 그들의 영화를 제대로 감상해본 적은 없다. 아마 훌륭한 영화일 것이다. 그러다 그들에게는 추문이 뒤따랐다. 범죄 행위이거나 거의 범죄 행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들의 영화를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기어코 봐야만 하나? 이런 문제제기다.


이름은 확장된다. 마이클 잭슨,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리하르트 바그너.

문제의식은 거의 같다. 그들은 분명 찬사를 받는 예술가이지만 도덕적이지 않다. 그들의 예술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피카소의 작품을 외면해야 할까?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지 말아야 할까?


그런데 나는 문제의식이 ’거의‘ 같다고 했다. 책을 시작할 때의 문제의식과 조금 달라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그들은 그냥 천재가 아니라 ’남성‘ 천재라고 지칭된다. 클레어 데더러의 문제의식은 단지 창작자와 작품의 분리 가능성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걸 용인하는 문화와 정서가 남성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렇다. 클레어 데더러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와 도리스 레싱, 조니 미첼, 벨러리 솔라나스, 실비아 플라스가 등장한다(모두 여성이다). 그들은 괴물인가?

특히 도리스 레싱이나 조미 미첼에 관한 이야기(자식을 버리고 떠나서 예술가로 성공하는 이야기)는 이언 매큐언의 《레슨》의 이야기가 아닌가? 앨리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여겨야 하는가?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저자 자신에게 돌아온다. 작가로서 성공과 엄마로서의 역할 사이의 갈등. 클레어 데더러는 가족을 떠나 몇 달 간 홀로 지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 시절, 그 상황을 회상하며 그녀는 더할 나위 좋았지만, 죄책감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그녀 자신이 스스로 괴물이라고 하지만(술에 대한 얘기와 더불어), 죄책감을 갖는 괴물도 있나 싶다. 도리스 레싱처럼 자식 둘을 다른 대륙에 두고 떠나버리는, 그런 단호함이 없는 저자의 페미니즘은 투철하지 못한 것인가?


그렇게 저자는 도덕적이지 못한 창작자와 걸작 사이에서 방황하다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실은 첫머리에서부터 '우리'가 아니라 '나'를 이야기했는데, 거기서부터 나는 이 책이 자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할 것은 예감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주관성에 대한 강조가 무척 좋았다. '나'를 '우리' 속에 파묻혀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 같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작품을 어떻게 소비할지의 문제에 대해 저자는, 그건 사회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것이라고 본다. 사회, 즉 우리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나의 고립성,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 어렵지만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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