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여기서 시작하다

클레어 키건, 《남극》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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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클레어 키건. 이 짧은 두 권의 소설로 하나의 현상처럼 올라선 작가.

몇 년에 한 권씩 극히 정제된 언어로 예리하게 생애의 단편을 긁어낸다.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후에 그녀의 작품이 거꾸로 번역되어 나온다. 《남극》은 그녀가 처음으로 발표한 단편소설집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작품이다.


다음은 《남극》을 읽은 단상(斷想)이다.


1.

소설들의 배치가 어지러워졌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 <남극>은 이미 《너무 늦은 시간》에 번역되어 실려 있었다. 두 번째 단편소설집 《푸른 들판을 걷다》에 실려 번역된 작품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도 《너무 늦은 시간》에 실려 있다. 말하자면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책이 여러 혼동을 가져온다.


2.

여전히 <남극>이 제일 인상 깊다.

그러나 소설집 《남극》에 실린 다른 작품들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작품이 아니가 싶다. 그래서 가장 인상이 깊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편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


3.

《너무 늦은 시간》을 읽고 쓴 글의 제목을 ”클레어 키건, 남자와 여자“라 썼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993848373). 그런데 이 제목(<남자와 여자>)의 작품이 이 소설집 《남극》에 있다(약간의 우쭐거림!?).

맞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천착한다. 그 관계는 상당히 종속적인데, 당연히 이에 대해 비판적이다. 여자는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려 하는데, 그 결과가 시원하지 않다. 그 지점에서 문학이 탄생하는 것 같다.


4.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소설들도 있다. 주로는 더 짧은 소설들이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키건이 단편에 끌리는 이유를 ”드러마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에, 긴장과 상실에 흥미가 있다“고 했다는데,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정이 없는 소설은 더 집중해야 하는데, 내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꼭 다시 읽어야 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5.

몇몇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종주의는 불편하다.

폭력적인 흑인 남성. 악몽 속에서도 흑인 남성이 등장한다.

이런 걸 짚은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6.

《남극》은 클레어 키건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집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작품집 자체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훨씬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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