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미술계에 잠입하다

비앙카 보스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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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영역도 아니고, 사후적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단순한 약자 정도로만 MBTI를 생각하는 나지만, 여기의 저자 비앙카 보스커는 분명 ‘대문자 T’다. 그랬다고 해야 하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현실주의자로, 왜 어떤 예술품은 걸작으로 취급받고, 다른 작품은 헌신짝 취급을 받는지 당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다 할머니가 남긴 당근 그림를 보고 그 의문을 풀고자 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해결되지 않는 그 의문(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을 풀기 위해 한 방식은 대담한 것이었다.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 예술가,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컬렉터 등에게 배우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낸다. 대부분 거절, 혹은 답장도 없다. 그러다 한 갤러리스트를 소개받고 아주 바닥 일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저널리스트 비앙카의 모험이 시작되었다(그런데 제목의 ‘스파이’로 할 수 있는 상상과는 달리 비앙카는 자신의 직업과 목적을 숨기지 않는다. 오프더레코드가 아닌 이상 대화를 녹음했고, 미술계의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직장에다 글을 쓰고 올렸다. 그러니까 공개적인 잠입이었던 셈이다).

그녀는 말 그대로 몸으로 미술, 예술을 체험한다. 처음 취직한 작은 갤러리에서는 ‘맥락’이라는 것을 중요시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뉴욕 예술계를 배운다. 맥락이라 함은, 배경이다. 예술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왔고, 누구에게 인정받은 적이 있는지 등등.

”나는 그 모든 것으로 구성된 무언가에 자꾸자꾸 부닥쳤다. 그 무언가의 이름은 바로 ‘맥락’이었다.

처음에 나는 사람들이 맥락이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말에 기름칠을 하는 별 뜻 없는 단어라고만 생각했다. 이 두 글자가 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미술계에서 맥락을 손에 쥘 수 있고 은행에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면서 귀중한 무언가였다.“ (107쪽)


다소 거들먹거리는 상사 아래서 그런 것을 배우면서 이해하지 못할 미술계였지만, 그러는 와중에 만난 화가 줄리 커티스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운다(나는 줄리 커티스를 구글을 통해서 찾아봤다). ”작품은 끝없는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이를테면 종이를 쓸 것인가, 천을 쓸 것인가, 어떤 재료를 이용해서 그릴 것인가, 어떤 식으로 그릴 것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엇을 그릴 것인가.

”스프레이 물감이 찢어진 청바지라면 유화 물감은 빳빳하게 다른 제복이고, 달걀노른자로 만드는 유서 깊은 물감인 템페라는 교황의 예복이다.“ (125쪽)


다음에 취직한 갤러리에서는 다른 경험을 한다. 미술품을 감상하는 법을 터득하고(즉, 아름다움을 느끼는 자신만의 방법), 작품을 실제 판매에 성공하기까지 한다. 예술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감상하고 바라보는 것을 터득하면서 동시에 예술품을 팔아야만 한다는 것도 함께 깨닫는다. 그래야 갤러리가 유지되고, 화가는 월세를 낼 수 있고, 다음 작품을 그릴 수 있다(이 장면에서 부자들은 모여 예술을 얘기하고, 예술가는 모여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한다는 오래 전에 들었던 상당히 서글픈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갤러리스트들이 굳이 소리 높여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지만, 누구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부의 대량 축적을 비판하는 예술이 바로 그들, 부를 대량으로 축적한 사람들에게 대거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95쪽)


비앙카는 줄리 커티스의 작업실 어시스턴트가 된다. 우리는 예술이란 고독한 작업이며, 미술 작품이 화가 한 사람이 단독으로 그린 것이라 여긴다(작가 이름이 하나만 쓰여있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나 어느 정도 이름이 나기 시작한 화가들은 어시스턴트를 둔다. 화가들이 어시스턴트로 경력을 시작하기도 한다. 작업실에서 화가를 도와 허드렛일(이를테면 물감 짜내기에서 바탕 칠하기 등)을 하면서 생계와 함께 ‘일’을 배우는 것이다. 비앙카는 예술이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였지만. 사물을 남다르게 보는 줄리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저자는 드디어 눈을 뜬다.


”내가 거의 10년 동안 매일 보았던 공동주택 건물의 우중충한 석회석 벽이 주황색의 밝은 부분과 연보라색의 그늘진 부분, 파란색의 그림자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퍼즐로 다가왔다.“ (339쪽)

그리고 예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예술은 우리의 본능이 현실에서 줄기를 쳐내고 가지를 생략하려 드는 시도를 막는 수단이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것을 알아채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공감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예술은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374쪽)


나는 책으로 읽으니까 이걸 글자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체험을 통해서 알아낸 것이다. 체험을 통해서 알아낸 것을 쓰고 있으니, 이론가의 미술 이론보다는 좀 더 다가오는 것은 맞다.

여기서 진격을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놀랍게도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비로 취직한다. 40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으며 미술관 구석에서 지켜서야 하는 일. 여기서도 미술품을 감상하는 법을 추가한다. 오래 보기. 우리의 미술관 ‘관광’의 방식은 몇 초 잠시 눈길을 멈추었다 다음 작품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많은 미술에 관한 책을 쓴 이들이 강조했듯이) 하나의 작품을 오래 보는 것은 감상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다. 그냥 보기. 그것이 나에게 다가올 때까지 보기.


이 책은 예술, 미술이 무엇인지를 탐구해 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을 읽으며 예술, 미술이 무엇인지를 좀 더 알게 된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과정 자체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알아가는 방법. 절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알기 위해 직접 체험을 하는 것은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나의 작은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것을 책을 통해서 알아가는 책상머리 지식인. 그래도 간접 체험이나마 이런 책을 읽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다. 좋은 독서였다. 아니 훌륭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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