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눈으로 세상 보기, 나의 눈으로 예술 읽기

윌 곰퍼츠,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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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카 보스커의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에서 한 작품 오래 보기, 표찰을 보지 않고 작품을 감상할 것을 제안하는 것을 읽은 직후라 책 앞의 도판들부터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별 감흥이 들지 않는 작품도 있었기에 금방 넘어가기도 했지만, 평소보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작품은 아주 오래 들여다보며 그림에서 무언가를 찾아보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읽기 시작했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 전문 저널리스트 윌 곰퍼츠가 읽은 예술 이야기다. 31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도판으로 소개한 작품은 작가당 한 작품씩이지만, 글에선 여러 작품을 이야기한다(모두는 아니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다만 웬일인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도판이 없다(글을 읽으면 도판으로 소개하기가 곤란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지만).


거의 모든 글이 작가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지를 파악하고자 애쓰는 저자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경우에는 작가가 직접 쓴 글, 했던 말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저자가 나름대로 읽은 것이다. 그런데 새삼 놀라운 것은 작가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컨스터블 같은 화가는 우중충한 영국의 날씨를 밝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에드워드 호퍼 같은 화가는 그 화려한 도시에서의 외로움의 정서를 표현했다. 비앙카 보스커의 책에서 읽은 표현을 따르자면, 어떤 작가는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어떤 작가는 낯익은 표현 방법으로 낯선 것을 우리 앞에 던져 놓기도 했다. 윌 곰퍼츠는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예술가들은 보여준다. 우리가 편협하게 살아가려할 때 예술 작품을 보면서 세상에는 다른 면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또는 나와 비슷하게 고민을 하며 살아간 예술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예술은 그렇게 쓸모가 있다. 윌 곰퍼츠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글을 읽기 전에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고 했는데, 가장 오래 들여다본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사무실>, 앨리스 닐의 <소이어 형제>, 파울라 레고의 <춤>이었다. 에드워드 호퍼야 매우 잘 알려져 있고, 그가 무엇을 그렸는지 대부분 동의하는 것이니 나도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다. 이미 짧게나마 알고 있는 것이 그림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었거나, 혹은 방해가 된 셈이다. 반면 <소이어 형제>나 <춤>은 그렇지 않았다. 화가나 그림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봤으므로(이미 한번쯤을 봤을 지도 모르지만, 느낌을 제외한 지식은 거의 없으므로) 그림 자체에서 무언가를 읽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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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만 얘기하면, 앨리스 닐의 <소이어 형제>에서는 한없는 쓸쓸함을 느꼈다. 살아온 생애의 고단함과 어쩌면 할 일을 마쳤다는 후련함도 보이는 것 같았다. 오른쪽 인물(형인가?)의 엇갈린 다리에선 불안감을 숨기고자 하는 안간힘을 읽기도 했다. 윌 곰퍼츠의 설명은 이렇다.


"모세와 라파엘 형제는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고 재능을 그리 인정받지 못한 채 고군분투하며 경력을 쌓아왔다. (...) 소이어 형제는 체념과 불안이 뒤섞인 상태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소파에 앉아 있는 형제에게서 상처받기 쉬운 취약함과 절망감이 배어 나온다." (252쪽)


윌 곰퍼츠는 앨리스 닐의 말도 전한다. "나는 뉴욕의 치열한 경쟁으로 너덜너덜해진 사람들을 그리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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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 레고의 <춤>은 다소 당혹스러웠다. 해변가에서의 춤이라니. 그리고 왼쪽의 한 여인은 짝도 없다. 왜 이 여인에게는 짝을 붙여주지 않았을까? 춤을 추고 있는 것은 맞는데, 왜 아무도 즐거워 보이지 않는 거지? 과연 춤을 추고 있는 것은 맞을까? 뒤에서 읽은 윌 곰퍼츠의 설명에는 "이 장면에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분위기가 물씬풍긴다."라고 쓰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분위기는 무엇일까?


내가 그림에서 읽은 것이 윌 곰퍼츠의 설명이나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거나 비슷할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괜찮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 물론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을 작가가 보여주듯이, 내가 읽지 못한 작품의 세계를 윌 곰퍼츠와 같은 평론가로부터 배울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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