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호, 《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
전대호라는 이름은 교양과학 번역가로 기억하고 있다. 아, 물론 그가 신춘문예 등단 시인이라는 것도 기억한다. 소개글에 적혀 있다. 그리고 학부는 물리학을, 대학원은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도.
그런데 다 읽고 놀랍게? 아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책을 여러 권 직접 쓴 저자이기도 한데 과학에 관한 책은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간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첫 과학에 관한 첫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읽으면서 시사성 있는 글이 꽤 있어서 어디엔가 이미 썼던 글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에필로그>를 보니 KIST의 <TePRI Report>에 “세계사 속의 과학기술”이라는 코너에 연재했던 글이다. 과학에 관한 책을 그동안 쓰지 않은 사정은 잘 모르지만, 쓰게 된 사정은 알 수 있다.
그냥 “과학을 읽는 시간”이라고 제목을 짓지 않고 굳이 ‘인간답게’라는 부사어를 넣었다. 과학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간의 활동인데, 그래서 그 과학을 읽는 것도 인간일 수밖에 없는 굳이 ‘인간답게’라는 수식어가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읽기 전에는 그저 단순한 수식어이거나, 혹은 과학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는 다짐, 혹은 권유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과학이, 혹은 과학과 관련된 활동이 인간의 것이 아닌 상황이 올 수도 있는,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정이 제목이 굳이 ‘인간답게’라는 당연한 수식어를 넣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1장 <과학은 차가운가>, 2장 <과학은 모험>에 실린 글꼭지들이 훨씬 재미있다. 주로 저자가 직접 번역했던 책들과 저자들이 등장하는데, 읽은 것도 있지만 읽지 않은 것도 있어 검색해 보게 된다. 또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이야기에 (과학)철학적 담론이 담겨 있어 길지 않은 글들임에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하지만 아마 제목의 의미와도 연결이 깊고, 또 저자도 공들여 쓴 글은 4장 <얻는 것과 잃는 것>의 글들이 아닌가 싶다. 주로 AI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글이다. 신기한 것은 저자의 문제 의식이 똑같은 번역가이지만 전혀 결이 다른 홍한별의 생각과 사뭇 비슷하다는 것이다. 홍한별은 번역을 의역 혹은 의미역을 옹호하면서 최근 번역이라든가, 그냥 책을 쓰는 게 기계 번역어에 맞추어 가는 세태를 지적했다. 글을 읽는 독자가 기계 번역어에 익숙해지다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또 작가들도 쉽게 번역할 수 있는 문장으로 책을 쓴다고도 했다.
전대호도 여러 차례 인용하는 문장이 있다. “기계가 인간을 닮아갈 위험보다 인간이 기계를 닮아갈 위험이 훨씬 더 크다.”(이 문장을 저자는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의 문장으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실은 시드니 해리스(Sydney J. Harris)가 처음 쓴 문장이라는 것을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알아냈다) 말의 범위와 이어지는 논의는 다르지만 홍한별이 우려하는 바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전대호는 AI가 절대 인간을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된다고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기계를 닮아가려는 상황에 대해서는 상당히 경계한다.
그리 두텁지 않은 책에서 여러 층위의 과학에 관한 논의를 읽었다. 앞으로도 전대호의 ‘과학에 관한 책’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