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화학》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는 세상의 원리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생명과학을 전공한 과학자는 세상의 모습을 결론적으로는 생명 현상으로 귀결시키려 한다. 화학자는 물론 세상의 모습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를 화학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연구하고 이해하는 층위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차이를 보인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세상의 모습을 보다 근본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그리고 생명 현상을 보다 원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화학이 필요한데(물리학까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늘 부족하다고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100개의 물질이라고 해서 궁금했다. ‘최소한의 화학’이라는 타이틀과 별로 호응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최소한이라고 하면 원소 수준에서 설명하는 것일 것 같은데... 그게 100개나? 별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원소를 제외하면 그만큼 숫자가 나오지 않는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분명 ‘물질’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그 물질을 통해서 생명과 우주, 미래를 읽고자 하고 있었다. 물질이야 거의 무한대이지 않겠는가?
저자가 100개의 물질을 고른 방식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논리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작은 근본 물질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지구로 진입한다.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에서 생명체의 물질로 이어진다. 이렇게 자연의 물질을 살펴본 후에 인류가 만들어낸 물질들, 즉 문명의 자산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그 미래는 다시 지구를 떠나 우주를 향한다.
이런 정연한 흐름 속에서 각 주제에 맞는 물질들을 골라냈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물질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물질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리그닌 같은 물질이 그렇고(리그닌이라는 물질이 희한하다는 게 아니라 이 물질을 화학자가 생각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푸트레신 같은 물질도 그렇다. 헨트라이아콘테인이나 케블라 같은 물질은 처음 들어본 물질이다. 그리고 벤질페니실린에 대한 이야기는 반갑고, 루비가 다른 부분이 아니라 우주를 향한 물질 파트에 실린 것도 신기하다.
예상한 물질에 대해 예상한 내용의 이야기가 있기도 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물질에 대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설명이 달려있는 경우가 더 많다. 생명과학 전공자로는 생명체의 물질 부분은 상대적으로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 물질들의 반응식과 화학적 내용은 새로운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화학 지식의 얄푸르함에 잠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100개나? 라는 나의 의구심은 이제 겨우 100개? 로 바뀌었다. 그런데 여기의 물질들에 대한 설명은 원리적으로 다른 물질들로 연결될 터이니, 실제로는 더 많은 물질을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세상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화학은 지식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원리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단 몇 개만의 원리로 해결되면 좋겠지만, 세상의 복잡함 때문에 좀 더 많은 화학 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자. 사실 이 정도는 약간의 과학 소양만 있으면, 아니 조금의 의지만 있으면 소화할 만하다.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앞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안내서로는 충분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