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침묵의 퍼레이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로 맨 처음 접한 것은 2014년 《용의자 X의 헌신》이었다. 우리나라 영화로 <용의자 X>가 개봉된 이후였고(보지는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이 조금씩 들려오던 때였다. 이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그는 우리나라에서 10년 이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60권 넘게 읽고 있다. 그리고 조금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법(?)에 지겨워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용의자 X의 헌신》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 작품으로 치고 있다. 그리고 갈릴레오 시리즈를 다른 어떤 시리즈보다 더 좋아한다. 형사의 관점이 아닌 과학자의 관점에서 이뤄지는 추리력과 함께 따뜻하면서도 애잔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침묵의 퍼레이드》는 우리나라에는 작년(2025년)에 번역되어 나왔지만, 서지를 보면 일본에서는 2018년 작품이다. 그렇게 보더라도 그리 오래된 작품은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전히 유가와 교수와 구사나기 형사(그리고 우쓰미 가오루까지)의 갈릴레오 시리즈를 써오고 있었다. 반가웠다.
《침묵의 퍼레이드》는 《용의자 X의 헌신》을 많이 닮았고, 그래서 좋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 표현은 너무 상투적이지만, 추리소설을 표방한 소설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게 반전을 위한 반전, 억지스러운 반전을 우겨 넣는다. 그러나 《침묵의 퍼레이드》은 그렇지 않다. 한 100쪽을 남겨놓고 사건이 다 해결되었다 싶은 것은, 이미 반전을 예고한다. 무언가 잘못된 방향의 해결이란 얘기다(“그런데 대체 유가와는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504쪽). 그런데 그 반전은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여전히 아귀가 맞지 않는 점이 있었고, 그건 눈 밝은 독자라면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걸 다시 짚어내고 마지막의 반전을 마무리한다.
이런 것은 《용의자 X의 헌신》을 꼭 닮았다. 그런데 《용의자 X의 헌신》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게는 쓰디쓴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과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 죄를 짊어지려고 한 남자가 있었는데, 제가 진상을 폭로하는 바람에 그 여자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남자의 헌신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같은 일을 더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551쪽)
이 말이 《용의자 X의 헌신》의 얘기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독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유가와 교수는 그 10년 동안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만큼 생각도 깊어졌다. 바로 그런 따뜻하고 애잔한 물리학자의 마음이 갈릴레오 시리즈의 진짜 매력이다.
몇 가지 단상을 추가로 적는다.
기쿠노라는 지역을 찾아봤다.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든 도시다. 당연히 기쿠노 시의 퍼레이드는 없겠지만, 일본에는 그런 퍼레이드가 많단다. 소설에서 퍼레이드는 실제 벌어지는 페레이드에 더해 살인범을 벌하려는 사람들의 퍼레이드도 함께 의미한다.
침묵도 마찬가지다. 그 침묵은 원래 살인범의 것이었지만, 결국은 살인범을 벌하려는 이들의 침묵이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헌신의 침묵이 되었다. 그리고 침묵은 깨어져야 한다는 것까지도 보여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죄와 단죄에 관한 딜레마를 자주 소재로 이용한다. 이 소설도 그렇다. 추리소설의 내용이 토론의 주제가 되는 경우가 흔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