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푸른 묘점》
마쓰모토 세이초의 《푸른 묘점》을 다 읽고 쓴다.
1.
구환회의 《독서를 영업합니다》를 읽으며 이 책을 메모해두었다(작가와 편집자가 중심인물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느낌을 토로했던 것 같다).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를 몰랐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이라는 데도 말이다. 그런데 《푸른 묘점》을 읽기 시작하면서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이미 이 작가의 작품을 읽었었더랬다. 《10만 분의 1의 우연》. 2019년에 읽은 이 책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읽고 쓴 독후감을 보더라도 구체적으로 내용을 기록하지는 않았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1461200763). 그리고 《점과 선》이란 작품이 있다. 여기저기서 소개되는 작품이라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며 아직도 카트에 둔 소설이다. 이 작품의 작가가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것도 이번에 인지했다.
2.
‘푸른 묘점’이 무슨 뜻인지 무척 궁금했다. 읽다 인터넷 검색도 몇 번 했다. ‘푸른’이라고 번역한 ‘蒼い’의 ‘창(蒼)’이란 한자는 얼추 이해했다. ‘창공(蒼空)’에 쓰는 한자이니. 그런데 ‘묘점(描点)’이 문제였다. 검색해도 이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소설을 다 읽고 책 뒤쪽의 문학평론가 조영일이 쓴 <푸른 가로등과 붉은 제동>이라는 해설을 읽고서야 이 단어가 한국어는 물론 일본에서도 쓰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대신 ‘묘선(描線)’이라는 것은 있단다. ‘사물의 형태를 그린 선’이란 뜻이다. 여기선 ‘선’이 아니라 ‘점’이다. 蒼도 그렇고, 描点도 소설의 내용과 연관짓는 게 쉽지 않다. - 중간에 잠깐 해설을 넘겨봤었다. 그런데 ‘책 내용을 누설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먼저 읽으세요.’라는 권유 내지는 협박을 잘 지켜 끝까지 읽지 않았었다. 덕분에 어딘가 이 제목이 드러날 만한 대목이, 그것도 마지막에 등장할까 해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끝내 기대는 배반당했는데, 작가는 그걸 염두에 뒀을까?
3.
하코네(箱根)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난다. 반가웠다. 풍경이 떠올랐다. 1950년대 얘기인데, 하코네는 그리 시대가 멀어보이지 않다.
4.
추리소설로서의 매력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정교하지 않다고 해야할까? 사건의 해결이 어떤 암시를 주면서 독자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해결된다. 오랫동안 늪에서 허우적대다 언제 어떻게 늪에서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게 빠져나와 사건을 해결해버린다. 해설을 쓴 조영일도 맘에 걸리는지, ‘우연의 빈발, 어설픈 트릭, 느린 전개 등’의 트집을 잡을 수도 있지만... 하며 말끝을 흐리고 있다. 역시 그의 말대로 반 세기 전의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까?
특히 느린 전개와 관련해서, 영민한 형사였다면 경찰 조직을 이용해 금방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다분히 ‘현실적인’ 안타까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5.
그래도 도작(盜作)을 소재로 하고, 작가의 허영심을 자꾸 언급하는 건드리는 것은 나름 참신했다. 소설가가 소설가의 치부를 고백한다고나 할까?
6.
미스터리 소설이 분명하지만, 작가가 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주인공 사이하라 노리코의 마음이 사키노 다쓰오에게 향하는 마음의 진전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소설에서는 거의 방향이 일방적으로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쓰오의 마음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그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