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츠지 유키토, 《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소설은 처음이다. 이름도 알지 못하던 이 작가의 《시계관의 살인》 역시 구환회의 《독서를 영업합니다》를 읽다 메모해 두었던 책이다.
나는 추리소설이라도 어떤 메시지가 없는 소설은 별로 끌리지 않는 스타일이다(적어도 그렇다 생각해왔다). 메시지가 담긴 추리소설을 일본에서는 ‘사회파’라고 한다던가. 그런 식의 말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는 《시계관의 살인》 같은 소설은 별로라고 생각해야 맞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흥미롭게 읽기 시작한 건 아니다. ‘시계관’이라는 독특한 건축물에 얽힌 살인 사건. 그러니까 건물에 트릭을 숨겨놓았다는 얘기다. 그걸 푸는 것이 소설의 핵심인 셈인데, 나는 소설을 읽으며 궁금증까지는 괜찮은데, 작가와 머리싸움을 하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피가 튀겼다. 읽다 몸이 부르르 떨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읽기에 속도가 붙은 게.
<15장 악몽의 끝>에서 범인이 밝혀진다. 얼추 스토리가 맞춰진다. 대충 이해가 된다. 그런데 소설은 아직 90쪽이나 남았다... 뭔가 더 있다는 얘기. 아니 맞춰진 스토리가 맞춰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뭐를 놓쳤을까?
사실 놓친 게 아니었다. 이미 작가는 시계관의 구관에서 그토록 여럿을 죽이면서 여러 단서를 남겨놓았다. 아마 독자들이 눈치채리라고도 여겼을 법하다. 왜 그토록 범인이 범행이 일어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핵심 단서다. 그것은 사실, 범행의 트릭을 해결한 추리소설 작가 시사야 가토미(이것도 트릭인지, 주요 등장인물 소개에 맨 마지막에 넣었다)는 몰랐던 단서다. 추리소설이 등장인물과 독자 사이의 게임일 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등장인물, 즉 탐정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인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에서는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비로소 딱! 꿰어맞춰진다. 한치의 빈틈도 없이. 남겨진 의문 덩어리도 거의 없다. 허투루 쓰인 단서도 없다. 이런 걸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한다던가. 아마도 나는 본격 추리소설의 진짜 맛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여신은 침묵의 감옥에 이어져 있다.
침묵의 여신의 단 한 번의 노랫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