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사토시, 《거짓과 정전》
오가와 사토시도 처음 접하는 일본 작가다. 작가 소개를 보니 SF와 추리소설이 섞여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인 모양이다. 내가 《거짓과 정전》이라는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작가 소개에 덧붙여진 《거짓과 정전》의 소개에는 이 책이 SF소설집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여섯 편의 단편 소설에는 SF적인 요소가 그리 많지 않다. 그중에서는 <거짓과 정전>이 가장 SF적이긴 하다.
그런데 소설이 SF적이니, 아니니 하는 것은 이 소설집을 읽고 평가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소설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를 따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상당히 놀랐다. 여섯 편의 작품이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깊이가 모두 무척 깊기 때문이었다. 마술을 소재로 한 <마술사>, 말과 경마를 소재로 한 <한 줄기 빛>,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를 등장시킨 <시간의 문>, 음악이 소재인 <무지카 문다나>, 문화와 유행을 다룬 <마지막 불량배>, 그리고 <마술사>처럼 타임머신이 소재이긴 하지만, 훨씬 깊이 있는 역사적 장면, 엥겔스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거짓과 정전>. 모두 깊이 있는 독서와 취재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편이 장편을 쓸 만한 독서와 취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놀라운 것은 이 작품들이 거의 주제가 하나로 모인다는 것이고, 그 주제가 상당히 깊이 있는 사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재료로 삼는 ‘역사’다.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운명은 결정되는 것인지를 묻고 있고, 어느 시점에서의 선택이 가져오는 미래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작가는 과거를 바꿈으로써 개인이든 모두 큰 규모의 역사든, 그 행로를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 무척 천착을 하고, 그것을 여러 소재를 통해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작가는 타임머신이 가능하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지만, 타임머신으로 통해서 과거를 바꾸고, 그렇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에 그다지 호응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를 각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의미 있는 읽은 부분은 <시간의 문>의 다음 대목이다.
”세계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든 정해져 있지 않든 어쨌거나 미래는 바꿀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위대하신 ‘주님’의 힘으로 세계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물론 미래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아가 만약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더욱 강고한 의미에서 미래를 바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꾼다’는 존재하는 것을 달리한다는 뜻이지요. 신의 힘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읽을 것을 결심했는지는 여전히 그 경로가 궁금하지만) 좋은 소설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