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뉴욕 한복판 마천루 한가운데 위치한 《뉴요커》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전도유망한 20대 청년 패트릭 브링리. 어느 날 그가 우상처럼 여기던 2살 터울의 형 톰이 암에 걸리고 세상을 떠난다. 그는 무기력증에서 허우적대다 적막한 공간에서 단순한 일을 찾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한다. 그곳이 ‘메트’로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그는 미술관의 경비원으로서 전시실의 한쪽 구석에 몇 시간이고 가만히 서서 예술품을 바라보고, 관객들을 바라보고, 가끔 질문에 답하고, 더 가끔 작품을 만지려는 행동을 제지하면서 보낸다. 많은 시간. 전시실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백 명의 숫자도 정확히 셀 수 있을 정도다. 그는 깊게 들여다보는 예술 작품에서, 그리고 동료 경비원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스쳐가듯 만나는 관객들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생각한다. 예술이 무엇인지, 그게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어떤 기쁨과 슬픔을 주는지, 어떤 각성과 좌절을 주는지를 조금씩 깨닫는다. 그리고 형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고, 새로 생긴 가족(아내와 아이들)의 소중함에 감사해한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에서도 비앙카 보스커는 미술관(그녀는 구겐하임이었다)에 경비원으로 취직해서 미술품을 깊게 오래 감상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것은 여기의 패트릭 브링리의 것과 일맥상통하지만, 비앙카 보스커는 예술을 향한 목적이 있었던 데 반해, 패트릭 브링리는 애초에 그런 목적이 없었다. 패트릭 브링리의 것은 일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보다 진지할 수 있었고, 보다 진정성이 느껴진다(그렇다고 비앙카 보스커의 행동과 글이 가짜라는 것은 아니다).
전시실에 우두커니 서서, 힘들면 가끔 뒷벽에 슬쩍 기대서서 오랫동안 예술품을 감상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예술을 배우기보다 예술에서 배웠다”. 이 이야기를 하는 대목(212쪽)에서 나는 갑자기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어떤가? 물론 미술 작품을 대할 때의 나의 태도는 어떤가? 그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를 배우려 하는가, 아니면 그 작품이 이야기하는 것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하는가? 나는 정답을 얻어내려 하는 것은 아닌가?
피터르 브뤼헐(패트릭은 그의 작품을 무척 좋아하는 듯하다)의 아마도 완성되지 못한 목판화 작품인 <더러운 신부 혹은 몹수스와 니사의 결혼식>이라는 작품을 얘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뜻밖이라고 느꼈던 것은 거장의 ‘지문’을 그토록 부자연스럽고, 일그러지고, 불완전하고, 초보적인 것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외양을 갖춘 완성품만으로는 예술에 대한 배움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에 담긴 고통을 잊지 않아야 한다.” (281쪽)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고통. 그것은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래서 작품을 사랑하게 되고, 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만, 그리고 삶에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작품과 작가의 고통에 관한 생각은 미켈란젤로에게도 이어진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릴 때의 고통과 좌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젊었을 때 만든 조각인 그 유명한 피에타가 아닌 늙어서 진행했지만 결국은 완성하지 못한 피에타상 스케치를 언급한다. 전에도 본 적이 있는 스케치였는데, 새삼 달리 보인다. 젊었을 때 완성한 매끈한 피에타와 비교해서 더욱 간절하고 치열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로 일하면서 많은 예술 작품을 보았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래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달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10년 동안 일한 경비원 일을 그만두면서 가져가야 할 그림, 가장 필요로 하는 그림으로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의 못 박히 예수>을 꼽았다.
그는 못 박힌 예수의 모습에도 감동을 받지만(그는 종교가 없다), “십자가의 발치에 뒤죽박죽으로 모여 있는 구경꾼 한 무리”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한다. “침통해하는 사람,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 지루해하는 사람, 심지어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는 사람”.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으로,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326쪽)
나는 왜 이 대목에서 울고 싶어졌을까? 왜 또 용기가 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