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전쟁, 혹은 MoMA

휴 에이킨, 《피카소의 전쟁》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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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아니 거의 중반까지도 미국의 문화 지형은, 적어도 미술과 관련한 문화 지형은 무척이나 보수적이었다. 미술관도 그렇고, 일반 대중들도 렘브란트나 페르메이르, 벨라스케스와 같은 작품들에는 애정을 보내고 환호했으나, 피카소와 브라크, 마티스와 같은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냉담함을 넘어서 혐오하고 두려워했다("이런 정신 나간 그림은 미국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심지어 반 고흐와 고갱, 세잔과 같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피카소를 비롯한 전위적인 현대 미술은 어떻게 미국에 진출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을까?


<뉴욕 리뷰 오브 북스>와 <NYR 데일리>의 편집자였으며, 지금은 <포린 어페어>의 선임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휴 에이킨은 미국이 현대미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이것을 '피카소의 전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피카소의 전쟁’이니만큼 이 스토리의 중심에는 파블로 피카소라는 거장이 있다. 그의 작품이 미국에서의 수용 여부는 미국 미술계, 미국 문화계의 지평을 좌우하는 지표와 같은 것이었다. 피카소는 마티스가 받아들여지고,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받아들여지고 난 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야 극적으로 미국에서 환호를 받게 되었다. 지난한 과정이었다.


피카소의 수용 여부가 스토리의 중심이지만 책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다. 바로 존 퀸이라는 변호사와 앨프리드 H. 바 주니어라는 인물이다. 그들이 바로 피카소를 비롯한 유럽의 현대 미술을 미국에 안착시키는 데 온 힘을 다한 장본인이었다. 조롱과 외면을 딛고, 심지어는 재산을 쏟고, 건강을 잃어가며 현대미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를 미국에 들여왔다.


먼저 움직인 인물은 잘 나가던 변호사였던 아일랜드계 미국인 존 퀸이었다. 그는 1913년 뉴욕에서 <아모리 쇼>라는 기념비적인 전시회를 통해 현대미술을 미국에 소개했다. 그러나 <아모리 쇼>는 흔히 현대미술이 미국에 처음 소개된 '성공적인' 전시회라 소개되지만(심지어 "종종 미국 문화의 분수령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실제로는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존 퀸은 자신의 재산을 써가며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 부자들이 지갑을 열게 만들려 했다. 스스로도 피카소의 작품과 루소의 전설적인 작품 <잠자는 집시>와 같은 작품을 구입하고 소유했다. 하지만 그는 이르게 죽었다. 그리고 그의 컬렉션은 미국의 미술관과 컬렉터들의 무관심 속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이 책에서는 이를 "뉴욕 예술계를 수치스럽게 만든 한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퀸의 사망 후, 세 명의 불굴의 여인(릴리 블리스, 에비 앨드리치 록펠러, 메리 설리번)이 의기투합해서 미술관 설립을 결정했고, 앨프리드 바라는 20대의 젊은이를 미술관의 책임자로 지목했다. 바는 퀸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으나 그가 기획한 전시회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기꺼이 퀸의 다음 주자 역할을 맡았다. 1929년 그들이 만든 미술관은 바로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이다. 흔히 MoMA라 일컫는 이 미술관은 설립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위상이 아니었다. 건물에 세 들어 있었고, 소유한 작품도 거의 없어 임대해서 전시회를 꾸렸다. 바는 이전의 전시 형태와는 달리, 전시장의 벽과 천장, 바닥을 모두 흰색으로 칠하고(이른바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고 하는 접근법의 시작), 작품을 한 줄로 전시하고, 예술적 형식에 따라서 스토리를 구성하는 등의 혁신적인 방식을 구상하고 실천했다.


바가 가장 혼을 기울인 작품은 당연히 피카소의 것이었다(특히 <아비뇽의 여인들>, <거울 앞의 소녀>, <세 약사>와 같은 작품이 중심이었고, 루소의 <잠자는 집시>도 반드시 입수해야 하는 작품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의 작품을 선보인 전시회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야유를 받았고,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성공했다. 그 계기가 전쟁이 적지 않게 작용하긴 했지만, 피카소는 미국에 진출했고, 점령하다시피 했다. 잭슨 폴록이 바가 제작한 《피카소: 화업 40》 사본을 작업실 바닥에 내던지며 "빌어먹을! 이 사람이 하지 않은 게 없어!"라고 외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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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전쟁》은 미술 이야기이고, 그것도 아주 부분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미술이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의 복잡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데 그 복잡한 과정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엮었다. 과정의 복잡함을 인식하게 하면서도, 책은 복잡하지 않고 명료하다. 그리고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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