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반동의 시대

파리드 자카리아,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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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미국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를 위키피이아에서 찾아보니, 화려한 언론인 경력과 함께 그를 규정하는 말은 ’자유주의자‘다. 원제가 《혁명의 시대(Age of Revolution)》인 이 책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에서도 당연히 그의 입장은 ’자유주의(liberalism)‘다. 그런데 이 자유주의는 미국에서 흔히 받아들이듯 진보적 가치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한 켠에서 우기는, 그런 ’자유‘도 아니다. 그는 명확히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개방적 무역과 시장 경제, 법 앞의 평등과 법치 질서 내에서의 국제 협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 그는 이런 자유주의의 정의 아래 역사적 혁명과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혁명적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그 2개의 부가 명확히 구분된다.


하나는 역사적 혁명이다. 네덜란드의 자유주의 혁명,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그는 절대 ’대‘혁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미국 혁명이 그것이다. 이 혁명들은 현대까지 이어진 세계 질서를 만든 변화를 일컫는다(’미국 혁명‘을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설명한 것은, 역시 미국 독자를 의식한 것일 거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대의 혁명으로, 세계화, 정보, 정체성과 관련한 혁명적 변화를 혁명이라고 하고 있고, 이것이 지정학적 이중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는 또한 혁명의 역사를 종적으로, 횡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개괄적으로 본다면, 1부의 역사적 혁명은 종적 기술, 2부의 현대의 혁명은 횡적 기술에 해당한다. 하지만 혁명에 대한 종적, 횡적 기술은 서로 얽혀져 있다. 옮긴이인 김종수는 이 책을 독립된 2개의 완결된 저작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앞의 역사적 혁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뒤의 현대의 혁명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현대의 혁명이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논의도 역사적 혁명에 대한 분석에서 나온다.


이러한 두 종류의 혁명 서술에서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다. 저자는 이를 맨 먼저 설명하고 있는데, 우선은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 극적이고도 급격한 변화이고, 다른 것은 ’회전‘, ’되돌림‘이라는 원래의 의미다. 첫 번째 의미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반해 두 번째의 것은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즉, 이는 급격한 변화가 이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이 가져오는 반자유주의가 21세기 들어 확산되고 있고, 이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라는 것이다.


역사적 혁명을 통해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혹은 (미국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 등이 정립되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시대적인 것이다. 진보적 의제가 어느 시점엔 우파 쪽에서 관심을 갖게 되고, 반대인 경우도 생겼다. 그래서 현재의 진보와 보수가 가치를 두는 것은 애초에 정립되었던 진보와 보수의 구분과는 다르다. 광범위한 사회 구조의 변화는 현대의 정치 질서가 추구하는 가치만으로는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기에 애매해졌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2부에서 얘기하는 정체성 혁명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에 맞서 반자유주의가 횡행한다. 저자는 트럼프를 반자유주의의 정점이라고 보고 있기도 한데, 이와 함께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더불어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인도의 모디, 헝가리의 오르반 등 복고적이고 국수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는 상황을 우려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추구해야 할 가치인 자유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조금 난감해진다. 매우 커다란 규모로 얘기하던 세계 질서가 갑자기 공동체의 회복으로 축소되고 만다. 이 대목에 와서야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이 떠올랐다. 철학적으로야, 혹은 사회학자로서야 어떨지 모르지만, 17세기 이후의 역사를 통해서 현대 세계 정세를 분석하는 언론인, 정치외교학자가 공동체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너무 소박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어쩌면 그건 실망의 다른 표현은 아닐까 싶다. 이 반동적인 흐름을 뒤집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선뜻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선(善)해지기를 권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손을 잡고, 서로를 이해합시다(?)


무척 재미있게 읽은 1부와 날카로운 분석에 고개를 끄덕인 2부.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 길이 매우 희부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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