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이제 일흔여덟이고 이것이 분명히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떠나고, 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이제는 여든 살이 된 작가의) 마지막이라는 선언 자체보다 내게 더 인상 깊은 것은, 이것이 ’대화‘라고 하는 점이다. 그는 독자들과의 대화로서 소설과 에세이를 써왔던 것일까?
줄리언 반스의 책을 적지 않게 읽어왔다. 처음 읽은 건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이었다. 그 이후로 연달아 《시대의 소음》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같은 걸작을 읽었고, 《용감한 친구들 1, 2》도 읽었다.
《연애의 기억》과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읽은 후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보낸 후 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감동스럽게 읽었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와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는 미술에 관한 얘기였으며, 2024년에 읽은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은 내가 그 해에 읽은 최고의 책 7권에 포함시켰었다.
한 달 전쯤엔 다른 책을 읽으며, 줄리언 반스의 책들의 목록을 보다 깜짝 놀라기도 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이 책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가 나왔다. 나는 이 ’마지막 책‘을 읽더라도 아직 읽을 책이 남아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아직 《플로베르의 앵무새》은 목록에 남아 있다.
우리 말 제목은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지만, 줄리언 반스가 이 책에 붙인 제목은 "Departure(s)"다. 그의 글 속에선 '출발'이나 '떠남' 정도로 쓰고 있는(번역하고 있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출발'이라면 '마지막 책'이라는 선언에 어울리지 않고, '떠남'이 그의 의도였으리라. 그런데 괄호가 붙은 복수? 여러 차례 떠날 수 있을까? "떠남은 대개 도착에 이른다"고 했으니, 그도 어쩌면 도착을 염두에 두고 있을까? 모르겠다.
그는 이 책을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라는 짧은 글에서) ’하이브리드‘라고 했다.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책. 당연히 이 글의 장르를 선뜻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도 뭔가를 도치시켰다고는 하지만, 거의 논픽션이라는 느낌이 짙다. 대가라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 자신 주변의 이야기를 그냥 쓰더라도 소설이라고 말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기억에 관한 줄리언 반스의 탐구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강렬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1067548756). 이제 그 기억에 대한 탐구는 늙음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IAM, 즉 involuntary autobiographical memory, 불수의(不隨意) 자전적 기억.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라는 그 유명한 이야기를 자주 언급한다. 나이가 들수록 줄리언 반스처럼 기억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까? 불완전하고, 왜곡된 기억들. 기억은 정체성의 요체이지만, 그 기억이 조금씩 잃어가면 내 정체성도 잃어간다고 여길까? '소설'을 읽으며 나중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