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를 들어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이야기를 들려줘요》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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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너무 익숙한 작가.

하짐나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에이미와 이저벨》로 처음 만난 게 겨우 3년 전이다. 이후로 《올리브 키터리지》,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오, 윌리엄》, 《다시, 올리브》, 《무엇이든 가능하다》, 《버지스 형제》, 그리고 《바닷가의 루시》까지... 다 읽었다. 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자신이 써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그녀가 써온 소설들 속 등장인물들을 모조리 등장시켜 모아놓고 있다. 지금까지의 소설들에서도 서로 다른 소설에 등장시켰던 인물들을 만나게 했는데, 그런 부분적인 인연을 이번에는 총체적으로 얽어 놓은 셈이다. 소설의 첫 문장을 "이것은 밥 버지스의 이야기다"로 시작했지만, 밥 버지스만이 주인공이 아닌 소설이다.


그래서 사실 너무 익숙한 과거를 지닌 인물들의 현재를 보는, 그런 느낌이다. 이 소설로 먼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읽는다면 조금은 궁금해지는 인물들의 과거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어떤 자신감 같은 것을 가지고 읽게 된다.


사실 그래서 조금은 의심쩍은 눈길로 읽기 시작했다. 고리타분하지는 않을까? 이미 이 사람들을 다 아는데, 그 이야기들의 반복이면 어쩌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작가가 어쩌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도 했다.


그러나 믿음은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런 구성이면서도 잘해 왔지 않았나, 그런 믿음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도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그런 느긋한 마음도 있었다. 지금까지 읽은 게 있는데, 이것을 읽지 않으면 뭔가 아쉬워질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인연을 맺은 인물끼리도, 이제 인연을 맺기 시작한 인물끼리도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 이야기라는 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루시와 올리브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게 되는 말, '기억되지 않는 삶'이다(묘한 것은 얼마 전에 읽은 소설이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기억하지 않는 삶에 대해, 당신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이 소설에는 가득하다. ’저마다 살아가는 삶‘에 대한 소중한 응시가 이 소설의 요지다.


그리고 자신의 하루를 들어달라고도 한다. 내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뻤는지, 슬펐는지, 얼마나 괴로운 일이 있었는지, 내가 만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사람과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마음은 왜 이런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존중받는다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우리말) 제목은 "이야기를 들려줘요"라고 했지만, 정작 더 어울리는 제목은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소설을 써온 세월만큼이나 나이가 들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이제 아흔을 넘겼고, 루시 바턴은 예순 다섯이다. 그래서 소설에 젊음의 감각은 없다. 예리함은 드러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말하지도 못한다. 생각은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유독 많다. 그래서 밥과 루시의 결말이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그 결말이 나쁘지 않다. 밥의 형 짐의 말대로 그렇게 살았어야 옳은 것이다. 밥은 밥이고, 루시는 루시다.


솔직하게 울컥거리며 읽었다. 아직 이들의 나이에 이르지 않았지만 곧 이를 것이란 생각, 이들과는 다른 위기였지만 위기를 겨우겨우 넘기며 살아가고 있는 삶. 그때 나는 나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그때의 현재를 어떻게 이해하면서 살아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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