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소설의 물질적인 기반과, 생산과 향유의 모습

고노 겐스케, 《책의 근대》

by ENA


오해하고 책을 골랐다!

저자가 책 뒤에 붙인 <발문>에 썼듯이 "비블리오필(애서가)을 위한 서적론, 책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걸 일본에서는 어떻게 썼나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책이 아니다. <한국어판 서문>을 읽으면서도 몰랐는데, 그 서문의 마지막에 저자는 이 책에 대해 "까다로운 학술서"라고 명시를 해놓았다. 아뿔싸!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다. 역시 저자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썼듯이, "읽기 그 자체가 수단화되어 자유를 잃고, 일종의 강박관념이 되었다(107쪽)". 물론 책의 구절과 나의 상태는 다르다.


역시 까다로웠다. 모르는 일본 근대의 작가들과 일본 용어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것쯤은 그러려니 할 수 있고, 용어에 대해서는 각주 설명이 되어 있으니.


정작 까다로운 것은 단어를 쓰는 방식과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학술서라 그런 것인가 싶긴 하지만 쉽게 써도 될 것 같은 말을 어렵게 썼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렇다고 정작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란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읽어보면 이해가 되니 말이다. 그렇게 읽다보니 읽는 시간도 더 걸린다. 그렇게 해서 훨씬 전체 내용이 잘 들어오면 좋겠는데, 또 그건 아니다.


그래도 몇 가지 요지는 건져냈다. 물론 전적으로 내 개인적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긴 하다.


저자는 이 책을 "책과 관련된 일본의 근대소설을 역사적 다시 파악해 보려는 작은 시도"라고 했다. 시간 순으로 여덟 장을 구성했지만, 각 장은 시간의 의미가 아니라 주제를 따른다. 일본의 근대에 책, 즉 book이 탄생하는 장면들, 책이 책으로서 형식을 갖추어가는 과정, 책이 놓인 공간, 즉 서재의 모습, 책이 사회를 반영하는 모습, 책에 사진, 특히 초상사진이 들어간 의미와 그 효과, 출판이 늘고, 잡지가 번성하면서 생긴 모습, 그리고 전쟁과 관련해서 부족해진 종이 때문에 생기는 일, 즉 이데올로기 통제와 같은 얘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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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자체를 요약하기보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을 몇 가지 언급해 보면 이렇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저자가 참 책의 물성(物性)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한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내용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지만, 책이라는 물체가 존재하게 된 과정과 책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것들, 이를테면 활자라든가, 그림, 사진이라든가 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고, 거기에 의미를 많이 부여한다("소설의 물질적인 기반과, 그 생산과 향유의 모습을 새롭게 살펴보는 일").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신체(身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책을 쓰는 것, 책을 만드는 것,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이 신체적 활동이라는 얘기다(예를 들어, 책 읽는 것을 "손의 운동과 눈길이 교차하는 가운데"라고 표현하는 것). 조금은 낯선 얘기이긴 하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읽을 때마다 최근 우리나라 교보문고에서 하는 광고 생각이 났다.


나쓰메 소세키에 관한 부분을 가장 잘 읽었다(가장 이해를 많이 했다는 얘기도 된다). 일본 근대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이니만큼 할 얘기도 많았을 터이다.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언어에 의한 기억 장치임과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전달 장치인 책이라는 매체가, 소세키라는 지휘자에 의해서 어떻게 변환되었는지 생각해 볼" 목표를 지닌 것이었다. 과연 목표가 어떻게 관철되었는지는 잘 파악은 되지 않지만, 다음의 내용은 기억해 둘만 할 것 같다.


"고서점에서 출발한 이와나미 시게오가 출판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최초로 간행한 단행본이 소세키에게 간청한 《마음》이었다."(89쪽)_근데 두세 번쯤은 들은 내용이다.

"나쓰메 긴노스케가 소세키가 되었을 때, 일관되게 지향한 것은 먼저 이 “나만은 기쁘다”라는 개인의 감각, 윤리였다." (96쪽)

"소세키는 쓴다는 것, 책을 만든다는 것의 밑바닥에 ’자기‘의 만족을 두었다. 그것은 다른 것으로는 바뀌기 어려운 ’자기‘였다. 그 바뀔 수 없음에 만족한 뒤에, 자신의 언어/신체를 차가운 활자로 바꾼다." (101쪽)


다음과 같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독서에 관한 흔한 얘기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 한 권과 만나고, 읽고, 헤어지는 과정을 거쳐온 한 독자가, 읽기와 삶을 포개려고 한다. (중력) 《파계》의 독자들에게 ’성스러운 책‘은 공허한 중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남의 불행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딱하게 느껴져‘ 읽는 독자 한 사람이 줄거리를 따라가고, 자신도 ’남의 불행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딱하게 느껴져‘ 읽음으로써, 공허함은 채워지고, 실제로 보인다." (160쪽)

"책이 그것을 읽고 소유하는 인간에 대해 해석하는 중요한 기호 가운데 하나가 된다." (161쪽)


다음과 같은 부분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내 책상 한쪽에 다자이 오자무의 책이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저작집부터 위기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복수성이 떠오르게 해서, 이 시기, 읽기가 초래하는 의미 생성의 힘에 촉발되어, 일탈과 과잉의 다산성을 내보인 또 한 사람의 작가로, 다자이 오사무를 들고 싶다." (289~290쪽)


그런데 다자이 오자무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평가가 도움이 될까 싶긴 하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위의 내용을 잘 이해는 하지 못하겠다.


끝으로 이 책을 보면서 약간 신기한 것 가운데 하나는 두 개의 그림이 있을 때, 오른쪽 그림부터 설명하는 것이다. 좀 어색했다. 우리의 경우는 거의 왼쪽 것부터 설명한다. 아무래도 일본 책의 형식일 텐데, 우리말로 옮길 때는 이런 것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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