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영혼의 미로 1》
2025년 5월 《바람의 그림자》를 읽었다. 이어 9월에 《천사의 게임》과 《천국의 수인》을 읽었다. 그리고 다섯 달가량의 말미를 두고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의 마지막 편 《영혼의 미로》를 읽기 시작했다. 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이전 작품이 이 완결편을 읽는 데 어떤 매너리즘 같은 것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 여운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즈음. 나는 기다렸다.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리면서 읽게 된다. 이미 등장했던 인물들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들의 과거는 간신히 떠올린다. 각각의 작품이 완결된 독립적 이야기이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안내가 있고, 순서대로 읽어도, 그에 따르지 않아도 좋다고도 써놨다. 《영혼의 미로》만 새로이 따로 읽는 것처럼, 동시에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의 마지막 지점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읽는다. 이미 그렇게 계획했었다.
이야기는 마드리드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스페인 내전(여기선 그냥 ‘전쟁’이라 칭한다)의 상흔이 남아 있는 바르셀로나다. 정부 장관 마우리시오 발스가 실종되고, 비밀 요원으로 훈련된 알리시아 그리스가 그를 찾아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알리시아는 20년 전 프랑코 장군의 사주를 받은 이탈리아 공군의 ‘바르셀로나 폭격’으로 죽음 직전에 구출된 소녀였다. 상처는 그녀의 몸에 장애로 남아을 뿐만 아니라, 마음 깊숙이 남아 있다.
1권에서는 발스의 미스티리한 실종과 알리시아의 추적이 그려지고 있다. 소설 속의 장면들은 갇혀 있는 발스를 묘사하고, 알리시아의 추적에 단서는 《영혼의 미로》라는 마타익스가 쓴 잔혹 동화다. 알리시아는 조금씩 과거를 향해서,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줄거리는 자제!)
그런데 1권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이른바 ‘바르셀로나 폭격’의 참혹함이다. 게르니카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이 폭격의 장면을 사폰은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사폰의 [잊힌 책들의 묘지] 연작은 다소의 판타지를 포함하지만, 여기서만큼은 절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만큼 적나라하다. 그러나 동시에 드는 생각은 그의 묘사가 아무리 자세하고 적나라해서 읽는 것만으로도 눈을 찌푸릴 정도지만 그게 실제만 할까 싶은 것이다. 어쩌면 사폰 역시 그 장면을 묘사하면서 좌절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영혼의 미로》를 읽으면서는 사폰의 문장이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아름다운 문장들, 훔치고 싶은 문장들이 많다.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담하면서도 적절한 비유가 가득하다. 대체로는 처연한 표현들이다. 이를테면, ‘강철처럼 차가운 겨울 해가 떠오르자’라든가, ‘햇살이 가루처럼 떨어져’ 같은 표현들. 알리시아의 차가운 마음과 고단한 삶이 그런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제 《영혼의 미로》의 비밀에 거의 다가간 알리시아는 운명 속으로 접어들 것이다. 아름답고 시린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