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역사 속 사랑에 관한 이야기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영혼의 미로 2》

by ENA
KakaoTalk_20260206_211708279.jpg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영혼의 미로》 1권, 2권을 모두 읽은 독후감이다.)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의 마지막 《영혼의 미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애초에 이처럼 긴 이야기를 구상했을 것이다. 영감이 아니라, 엔지니어의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는 사폰이다. 그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설계했다. 서로 얽힌 복잡한 인물 구성부터, 각각의 이야기를 어디서 끊고, 다시 어디서부터 이을지를 면밀하게 계산에 넣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4부작은 하나하나만 보더라도 완결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연결했을 때 더 정교한 구조가 보인다. 퍼즐은 각각의 이야기에서 이미 맞춰졌다고 여겨졌지만, 결국은 여기 《영혼의 미로》에 와서 더 넓은 범위로, 더 빈틈없이 맞춰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혼의 미로》는 앞의 《바람의 그림자》, 《천사의 게임》, 《천국의 수인》보다 훨씬 스펙터클하다. 음모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는 훨씬 조직적인 것이었다. 또한 보다 더 역사적이고, 보다 더 미스터리물에 가깝다. 20세기 전반 프랑코 장군의 반란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나고, 사건을 두고 추적해가는 장면이 스피디하다.


《영혼의 미로》의 여성의 모습도 이전 작품의 모습과 다르다. 《영혼의 미로》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알리시아 그리스이다. 그녀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어둠 속에서 은밀한 일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 작품에서 사랑 속에서 의미를 찾는 여인들과는 달리(물론 그들 가운데도 주체적인 인물들이 있었지만), 남자들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이용하고, 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지고, 또 누구보다 결단력 있는 인물이다. 사폰은 자신이 만든 인물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하면서 마지막을 위해 특별히 남겨두었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알리시아가 마주한 것은 치졸하고도, 구역질 나는, 거대한 조직적 음모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신을 부리는 인물까지 있었고, 그 인물은 자신을 없애려고도 했다. 결국은 샘페레 서점의 사람들에 의해 살아남아 복수를 하고, 스페인을 떠나게 된다.


《영혼의 미로》는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만큼 지금까지 등장했던 이름들이 다시 소환되고, 이야기들이 요약된다. 그래서 다시 앞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마치 아쉽게 떠나보내는 느낌이 든다.


4부작을 다 읽고, 이 소설들의 다면적인 성격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된다.


우선은 판타지. ‘잊힌 책들의 묘지’라는 설정 자체가 환상이며, 《영혼의 미로》에서는 다비드 마르틴이 환상의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지만, 앞의 작품에서는 그 환상의 인물 자체가 판타지처럼 작용한다.


미스터리물. 음모가 있고, 사건이 있다. 그리고 비밀을 알아내려는 고투가 있다. 특히 《영혼의 미로》는 그런 수사물의 성격이 짙어졌다.


책에 관한 이야기. ‘잊힌 책들의 묘지’도 그렇고, 샘페레 서점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의 대화도 그렇고, 사폰의 이 시리즈는 책에 대한 송가(頌歌)다. 책에 대한 찬송이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또 그 허망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꿈을 꾸는 자들은 불행하도다. 그들의 꿈은 허영과 환멸로 가득한 연옥일지니.”


그리고 사폰은 이 소설들에서 메타소설적 수법을 많이 썼다. 책 속에 책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으로 이야기를 연결하고 독자들을 이해시킨다.


또한 사랑의 이야기다.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모든 편에서 등장한다. 사랑 때문에 자신의 삶과 목숨까지도 바치는 이야기.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귀여운 청년들, 예쁜 아가씨들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은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많은 불행하거나 뒤틀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이 역사적 산물이었다. 음모를 꾸미고, 배반을 하고, 개인적 욕심을 부리던 사람들은 역시 그 역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모른다. 스페인 역사에 대한 사폰의 관점은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분명해졌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사랑에 빠지는 인물들이 권력자들의 음모에 도망치다가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 혹은 복수하고, 정의를 찾기 위해서 돌아와 맞서는 이야기. 그게 잊힌 책들의 묘지 시리즈다. 그 이야기가 끝이 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처절하고, 아름답고, 시린 이야기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