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이 단어가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에 그 자신도 모르게 찰칵 하고 시동을 걸었다. 잊고 지낸 삶의 편린 하나가 서서히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것 같았다.” (34쪽)
거의 외부와는 차단된 채 지내는 60대의 소설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난다. 그들은 소설가에게 과거로의 기억을 향한 시동을 걸고는 사라진다.
소설가는 과거를 찾아 나선다. 소설가에게 과거는 단 두 시점밖에 없다. 여섯 살과 21살. 60대의 소설가는 40년 전의 기억으로 향하고, 40년 전의 청년은 다시 15년 전의 기억으로 향한다. 모두 아니 아스트랑이라는 여인과 관련된 기억. 그는 자신을 지웠었고, 자신과 관련된 이들을 지웠었다.
흔적들은 흐릿하지만, 조금씩 흔적을 드러낸다. 그 기억은 지워진 게 아니라 지운 것이었다. 그것은 완강한 자기 보호의 기작이었다. 자신을 보호하던 사람들로부터의 버려짐에 대한 충격적 과거는 그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없는 기억이었다.
“어쩌면 그는 자발적 기억상실을 통해 이제야말로 완벽하게 과거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83쪽)
노벨문학상이 수상자로 선정되기 바로 직전 발표한 이 소설에서도 파트릭 모디아노는 끈질기게 잊힌 과거를 향한 발걸음을 힘겹게 내딛는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변주이지만, 그 끈질김은 보상을 받았다. 그 반복이 지겹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것이 진실에 가까워서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다라간은 여태 고이 파묻혀 있던 슬픔이 마치 불붙은 완연(緩燃)도화선처럼 지난 세월을 타고 서서히 타들어가지나 않을까 너무 두려웠다.” (1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