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으로 《인간 실격》보다 《사양》을 먼저 읽으면서 “《인간 실격》의 퇴폐와 파멸”이란 말을 썼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900689692). 《인간 실격》을 읽기 전이었으니 세간의 평에 의존한 선입견이었다.
‘퇴폐와 파멸’. 맞다. 《인간 실격》은 요조라는 한 사내의 스물 몇 해의 퇴폐적 삶과 그로 인한 파멸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퇴폐나 파멸 모두에 각주가 필요하다.
소설 속 요조라는 사내와 다자이 오사무의 삶에는 공유되는 부분이 많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공산주의운동에 발을 담갔다 전향했다. 여러 여인들을 전전했고, 자살 시도를 했고, 가까운 이들에 의해 정신 병원에 갇히기도 했다. 그런데 다자이 오사무가 소설에서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 아니면 비평, 옹호 같은 이유가 아니다. 심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순수한 사내가 어떻게 파멸되어가는가를 그림으로써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국가가, 혹은 한 국가를 넘어선 현대의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고 위선적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퇴폐는, 파멸은 그 과정이고 결과였다.
그런 메시지를 위해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을 치열하게 객관화했다. <서문>의 사진 세 장에서 웃고는 있지만 인간미가 전혀 보이지 않은 미남의 모습부터 삶의 위선성을 증명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닦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은 자신의 삶과 참 많이 중첩되는 사내의 삶을 ‘수기’ 형식으로 쓰면서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할 정도이다.
소설 속에서 요조는 ‘죄’에 대해 반복해서 끈질기게 질문한다. 죄의 반의어를 찾는 것은 과연 무엇이 죄인지를 묻는 것이다. 삶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과연 죄를 지어서인가? 그렇다면 죄의 반대는 무엇인가? 이렇게 망가진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가능한가?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정말 나는 죄를 지은 것인가? 나약함은 죄인가?
결국 이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가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 된다. 책 끝에 적힌 작가 연보에서 1948년 《인간 실격》을 발표하고 난 후 ”6월 13일 도쿄 미타카의 다마 강 수원지에 애인 야마자키와 함께 투신.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뜸.“이라는 마지막 문구는 《인간 실격》이라는 소설이 어쩌면 그의 유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