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감각 인식

피터 고프리스미스, 《후생동물》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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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여정》을 읽으려고 책을 펼쳤었다.

저자 이름이 낯익지는 않았다.

그런데 낯익은 책 제목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아더 마인즈》. 문어를 통해 의식의 정체를 탐구한 책이었다. 잘 읽었던 기억이 있다. (https://blog.naver.com/kwansooko/221570973041)


그리고 또 한 권의 책이 더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생명의 여정》으로 《아더 마인즈》, 《후생동물》에 이어 ‘의식 탐구 3부작’이 완성되었다고 쓰고 있다(피터 고프리스미스 트릴로지). 그렇다면 《생명의 여정》을 읽기 전에 《후생동물》을 읽을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읽었다.


쉽지는 않은 책이다. 《아더 마인즈》를 이렇게 어렵게 읽었나 싶을 정도다. 원생동물(동물이 아니다)에서, 해면동물(유리해면), 자포동물(연산호), 절지동물(새우), 연체동물(문어), 어류(부시리) 등의 척추동물까지. 물에서 생겨나 뭍으로 올라온 생물까지 ‘생명의 나무’를 훑고 있다.


문제는 왜 훑고 있냐는 것이다. 그저 고등학교 교과서의 분류 파트의 얘기처럼 각 동물의 특징을 구분하고, 다양성에 감탄하기 위해서?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그리고 그런 부분은 무척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지만(이를테면, 문어에서 뉴런의 2/3가 다리에 있다던가, 두꺼비의 두 눈이 서로 시야를 갖는다든가 하는 얘기들), 정말 피터 고프리스미스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것을 넘어선다.


그건 바로 동물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 경험을 의식하는 이야기다. 동물은 어느 단계에서부터 경험을 인식할 것인가? 예를 들어, 연산호는 경험이라는 것을 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엄밀하게 말해 과학철학이다. 읽고 이해하는 데 난감한 지점은 바로 그 부분들에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뭘까?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고프리스미스도 그것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경험함과 경험하지 않음, 혹은 의식이 있음과 의식이 없음이 경계를 두고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생명의 나무의 가지에 놓인 동물들은 어느 단계에서든지, 그것이 어느 정도나 제어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정도는 몸을 느끼고, 그 느낌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된다.


이러한 인식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까? 아마도 (당연히) 독자에 따라서 다른 결론으로 향할 것 같다. 내가 가장 눈길이 가는 결론은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그러나 무언가가 동물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은 꽤 명확한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것이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계속한다면... 나는 이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있어선 안될 나쁜 관계다. 보통은 습득한 지식이 다른 곳에서 고통의 감소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도리에 맞으며, 그것은 중요하다. 이 영역에서 나는, 종종 다른 이유로 수행된 기초 연구의 예상치 못한 결과로 실질적인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가장 괴롭다.” (367쪽)


참고로 책 제목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후생동물(Metazoa)’은 사실 요새는 거의 쓰지 않는 용어다. 실제로는 그냥 동물이다. 과거 원생동물(Protozoa)을 동물의 한 종류라 생각하며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에른스트 헤켈이 ‘우월한’, ‘다음’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썼던 용어다.


끝으로 한 가지 첨언하자면, 읽기에 힘든 이유에는 어쩌면 번역의 문제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강력한 의심, 혹은 변명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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