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참고 참다 읽었다.
명성이 드높았다.
200년대 이후 태어난 작가로 처음 아카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이력도 분명히 이 소설을 독자에게 어필하지만, 이동진이라는 막대한 후원자를 얻은 것은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출판계와 독서계에도, 부익부 빈익빈, 혹은 마태효과(Mathew’s effect) 같은 게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 책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초기 효과가 강력한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소설에 붙은 여러 이력은 초기에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용했을 터였고, 그게 다시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동진 추천이라는 꼬리표를 달더라도 잠시 반짝했다 독서열이 떨어지는 책도 있으니, 이 책의 꾸준한 인기는 책 자체의 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나도 거의 부화뇌동 비슷한 심정으로 읽었다(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작은 실마리를 쥐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재주, 혹은 끈기를 느꼈다. 어쩌면 ChatGPT와 같은 것을 두고 질문을 이끌어가는 요새의 상황이 반영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그게 괴테라니... 하는 약간의 위화감이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여겨졌다.
다만 인물들은 다소 평면적이다. 인물들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우리 곁에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즉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고민을 한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들의 고민은 매우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갸우뚱거려졌는데, 사실은 나는 공감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다소는 과녁을 찾지 못한 의심이긴 하다.
박진감 넘치는 사건도 없고, 스토리가 감동적인 것도 아닌데, 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앞서 썼던 대로 문학상의 배경, 막강한 후원자의 추천, 그런 데 영향을 받아서 필독서 같은 게 되어 이렇게 된 것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매력이 있다.
그건 지적 만족감, 지적 자극 같은 것이랄까, 그런 게 이 소설에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괴테라는, 아마도 보통의 독자라면 거의 읽지 않을, 그러나 위대한 지성의 작품과 말을 찾아다닌다는 설정은, 마치 내가 괴테를 알게 되는 건 아닌까 하는 착각에 들게 한다. 거기에 명언이라는 것의 정체, 혹은 학문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소설적으로 풀어낸다는 데도 이 소설은 지적 만족감을 기꺼이 충족시킨다. 나는 무언가를 읽는다, 그 무언가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면, 무척이나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런 느낌을 준다. (나는 이 책의 지적 면모가 가장 마음에 든다. 나는 아무래도 그런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게 허영심 같은 것이라 해도 말이다.)
그리고 괴테의 명언(“사랑은 모든 것을 뒤섞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의 출처를 찾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그게 매우 정교하다거나, 기발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연 어떤 결말이 날까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궁금증을 해소해가는 과정이다. 결국 그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인상 깊은 것은, 시카리 노리후미의 위작 사건이다. 이 사건이 처음 드러났을 때부터, 시카리의 날조를 폭로한 게 시카리 자신이라는 건, 많은 독자가 짐작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나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는 도이치가 괴테 명언의 불분명한 출처와 맞물리고 있다. 시카리에 관한 이야기는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이고, 우리가 흔히 알고, 듣고, 말하는 출처라는 것을 얼마나 얄팍하게 검증하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시카리라는 학자가 학계의 권위라는 거대한 모래성을 무너뜨리고자 했다면, 더욱 처절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라 소설에서 보이는 정도의 파장을 주려고 했다면, 과연 자신의 수십 년 학자로서의 경력을 던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이런 큰 사건, 내지는 의도가 마치 에피소드처럼 다뤄지는 것은 불만족스럽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초반부에 도이치와 시카리가 나눈 대화다. 시카리는 자신을 ‘명언충’이라며 명언의 유형을 축약형, 전승형, 위작형으로 나눈다. 명언이 이 세 가지 유형뿐이라면 우리는 모두 명언을 대충 알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은 명언만 그런 게 아니라 지식을 그렇게 얻고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다.
“독일 사람은 말이야.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 (23쪽)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116쪽)
“실감이 동반되지 않으면 온갖 소설과 논문도 그저 잉크 자국일 뿐이다.” (124쪽)
“모든 건 이미 말해졌어도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재미없지.” (2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