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Oct 20. 2020

유럽인이 '유럽인'이 된 시대

올랜도 파이지스의 《유러피언》

유럽인들은 언제부터 스스로 자신들은 유럽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이 질문은 그들이 유럽이라는 대륙에 살고 있다는 단순한 지리적 자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유럽인으로서의 동질감을 갖게 되었는가, 정서적 자각에 대한 얘기다. 그러니까 프랑스인이 영국인을, 독일인을, 러시아인을, 서로 다른 국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럽인으로서 어떤 동질적 가치와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올랜도 파이지스의 《유러피언》은 바로 유럽인이 스스로를 유럽인으로서 자각하고, ‘유럽 문화’라는 개념, 나아가 그 실체가 탄생하는 시기를 다루고 있는 역작이다. 그는 19세기 중반의 어느 시기,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철도가 본격적으로 유럽 대륙에 부설되기 시작한 시기에 유럽인, 유럽 문화가 탄생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서문 자체를 1946년 6월 13월 최초의 증기 기관차가 파리의 생 라자르 역에서 브뤼셀로 출발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만큼 상징적인 사건이며 시기라는 얘기다. 


철도는 국가의 경계선을 쉽게 넘어갔고, 그로써 유럽 문화의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의 작품이 쉽게 국가 사이를 오가며 향유되고, 거래되었다. 음악가들도 기차를 타고 나라에서 나라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도, 책도, 악보도 값싸게 복제되어 판매되었다. 물론 철도가 부설된 도시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귀족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해외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고, 해외여행은 유럽인으로서의 공통성을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유럽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사상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비로소 ‘유럽인’이 된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유럽인, 유럽 문화의 탄생에 대한 얘기를 세 명의 예술인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러시아의 소설가 투르게네프, 가수이자 작곡가인 폴린 바야르도, 그리고 그의 남편인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루이 비야르도가 그들이다. 이들을 두고 당시의 유럽의 문화 지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올랜도 파이지스의 전략이다. 그냥 학술적으로, 혹은 그 주제를 중심으로 벌어진 각국의 상황을 다루었다면 상당히 따분한 책이 되었을 텐데, 이 셋과 그들을 둘러싼 예술가들은 이야기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투르게네프는 지금은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보다 조금은 덜 유명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친 러시아 작가였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관례를 뛰어넘어 글로 벌어먹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러시아는 물론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을 종횡무진했다. 가수 폴린 바아 르도와 언론인 루이 비야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투르게네프는 폴린을 거의 여신으로 받들었고, 평생을 그녀 주위를 맴돌았고, 루이는 그걸 용인했다. 이 세 명이 교류한 인물들은 그 이름 하나하나가 전설이 된 작가들이었고, 작곡가들이었고, 화가들이었다. 어마어마한 인맥을 통해 유럽의 문화 중개인 역할을 했고, 말하자면 국제주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었다. 


올랜도 파이지스는 이 세 명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이 책의 또 하나의 중심 주제인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거행된 푸시킨 축제에서 투르게네프와 도스토옙스키 연설의 극명한 대비인데, 투르게네프는 푸시킨이 훌륭한 시인이지만, 셰익스피어나 괴테 등에는 못 미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들만큼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푸시킨을 세계사적 천재로 치켜 세우며, 러시아 민족주의를 고양시켰다. 자신들의 신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말이었고,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랜드 파이지스의 의도는 분명하다. 1800년대 말의 민족주의에 대한 고양이 결국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플랑드르와 폴란드의 전장)으로 이어졌음을 이야기하며 유럽인으로서의 동질감, 국제주의라는 연대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당연히 현재의 상황과도 연결된다. 유럽연합이라는 틀은 분명 그때부터 이어져온 하나의 유럽이라는 대의에 대한 실현이지만, 브렉시트에서 보듯 아슬아슬하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 앞에, 아니 그 현실과 주장 앞에 국제적 연대는 너무나도 허약해 보인다. 저자는 유럽 문화의 탄생 시점을 통해서, 그 시기에 활약했던, 어쩌면 가장 무기력해 보이는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서 국제주의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주제의식과 함께, 책의 내용은 화려하다. 우리가 현재 향유하고 있는 서양 문화의 대강이 바로 그 시기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작곡가와 화가, 소설가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우리는 19세기에서 별로 멀리 오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음울하지만, 그래도 알아야 하는 뇌물의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