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홀랜드,《루비콘》
루비콘. 다 아는 얘기다.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외치며(원래 있던 말이고, 실제로 그 말을 했는지, 어느 장면에서 했는지에 대해선 이야기가 많다) 로마 원로원의 지시를 어기고 무장을 한 채 루비콘 강을 넘어 로마로 진격. 결국은 로마를 지배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수백 년 이어진 공화정이 무너진다. 역사가 바뀌는 순간, 그 상징이 바로 ‘루비콘’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카이사르의 눈부신 승리에 관한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사실 지겹다. 우리는 카이사르의 업적과 매력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 콜린 매컬로 등을 통해 충분히 읽었다.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또 남성적 매력도 갖춘 카이사르가 로마 공화정의 한계를 통찰력 있게 꿰뚫어 보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게 그때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전부일까? 아닐 것이다.
톰 홀랜드는 공화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서문에서 원래는 이 책의 제목을 ‘시민’이라고 지으려고 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루비콘’이 아니라면 ‘공화정’, 혹은 ‘공화국’이 적절했을 것으로 보인다.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 즉 ‘공적인 일’을 어원으로 하는 공화정(Republic)이라는 제도를 최초로 만들어낸 로마인은 ‘왕’이라는 말에 대해 극도로 거부감을 가졌다. 그러나 오랫동안 유지해온 공화정은 그 모순을 더해가고 있었고, 결국 마리우스와 술라의 대립을 거쳐 결국엔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무너지고 제국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톰 홀랜드는 바로 그 공화정의 몰락해간 역사를 더듬고 있다. 그는 로마 공화정이 어찌할 바 없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시민이 주인인 정체인 공화정을 바꾸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줄기차게 언급한다.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로마 시민이 결코 원하지 않은 변화를 강요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 톰 홀랜드는 카이사르가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에게 무한 애정을 주거나, 역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보지 않는다.
그건 후대의 역사에 대한 영향을 보아서는 더욱 그렇게 밖에 볼 수밖에 없을 듯도 하다. 보나파르트 체제는 ‘카이사르주의’에 바탕을 두었으며,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은 카이사르의 영웅적 행동을 본뜬 것이었다(적어도 그렇게 선전했다). 영웅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며, 기대감을 줄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어느 사회나 영웅을 기다리지만, 영웅에(만) 기대는 사회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톰 홀랜드는 영웅에 무참하게 뭉개진 ‘시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물론 폼페이우스가 시민들 편이라는 얘기는 절대 하지 않지만).
긍정할 수도 있는 그의 카이사르, 즉 영웅에 대한 태도, 공화정에 대한 향수는, 그런데 또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시민’이라고 하는데 그 시민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공화정의 치열한 경쟁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단순히 시대적 모순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저자를 비롯하여 많은 역사가들이 2500년 전의 역사를 통해 현재에 대해 발언한다. 그런 이유로 공화정을 무참히 짓밟은 카이사르를 비판할 수 있다면 당시의 공화정의 모순 역시 비슷한 정도로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서 이름을 가져와 캐피톨 힐에 의회를 차려놓은 현대의 제국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현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또 조금이라도 나은 사고를 하고, 또 조금이라도 사회가 나아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공화국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의미가 있다.
소설처럼(콜린 매컬로의 소설에서 하는 이야기가 원래 역사에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비로소 확인했다) 박진감 있게 읽히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나 카토나 키케로 등의 원로원의 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면에서 민중파의 것이었는지, 원로원파의 것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즉, 모순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그 모순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지는 않고 있고, 분명 그 모순을 파악하고 있는 양측의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깊게 다루지는 않고 있다. 그게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