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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Oct 22. 2020

아우구스투스에서 네로까지, 로마제국 첫 100년

톰 홀랜드의 《다이너스티》

《루비콘》이 로마 공화정이 모순이 극대화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카이사르에 의해 무너지고, 결국엔 옥타비아누스가 최종 승리자가 되는 장면까지 이어진다면, 《다이너스티》는 그다음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아우구스투스 황제(옥타비아누스)에서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까지, 이른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의 다섯 황제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제목도 Dynasty, 즉 왕조, 아니 황조(皇朝)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는 네로까지 다섯 황제로 끝이 난다. 


로마제국 첫 100년, 그다지 길지도 않은 치세지만 이 다섯 황제에 관해서는 정말 말이 많다. 제국을 이룩하고도 죽을 때까지 원수정의 모양새를 취하고, 그 연극을 훌륭하게 해낸 아우구스투스에서, 위대한 장군에서 카프리 섬의 추문으로 막을 내린 티베리우스 황제, 게르마니쿠스의 셋째 아들로 ‘꼬마 장화’란 애칭으로 병사들 사이에 귀여움을 받고, 온갖 기대를 받았지만, 결국은 가장 추악한 황제로 전락하고 살해당한 칼리굴라, 전혀 물망에도 오르지 않고, 또 스스로 기대치도 않았는데 어쩌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실은 그 밖에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지만) 클라우디우스 황제, 그리고 어머니 아그리피아의 술책으로 황제에 자리에 올랐지만 폭군으로 대명사로 역사에 자리를 굳힌 네로 황제. 그들의 매혹과 위선, 부패와 추문, 광기와 잔혹함, 고뇌와 편집증 등이 바로 이 《다이너스티》의 소재이자 주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치밀한 연극으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제정은 이후 네 명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의 황제들을 거치면서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세습왕조였지만, 바로 친아들이 다음 황제에 오른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 후 몇 명의 단명한 황제를 거쳐 별로 주목도 받지 못하던 장군인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에 자리에 오른 이후에야 진짜 세습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다섯 황제의 역사를 읽다 보면 그들의 추악스러움에 혐오감이 절로 인다. 아무리 권력의 속성이라지만 근친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살해, 상식적이지 못한 처신들, 거기에 온갖 추문들. 그런 로마 제국이 그 후로도 수백 년을 이어져 갔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니, 그러는 와중에도 로마제국의 영토는 더 넓어지고, 로마에 의한 평화, 즉 팍스 로마나가 정착되어 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사실 그래서 의심이 가기도 한다. 톰 홀랜드는 《루비콘》에서도 공화정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뿜어냈다. 혹시 이제 공화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에 제국의 황제들과 가문이 얼마나 추악스러웠고, 모순덩어리였는지를 폭로함으로써 분풀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톰 홀랜드의 성향이나 그것에 바탕으로 둔 의심과는 상관 없이 《다이너스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톰 홀랜드는 역사에 기록된 다섯 황제의 치세를 막힘 없이 풀어내는데 분명 기록에 기초한 역사서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힌다. 인물들의 대화는 없지만(그것이 있었다면 분명 소설로 분류될 터이다), 그들이 그 장면에서 무슨 말을 했을지, 어떤 제스처를 취했을지가 저절로 상상이 갈 정도로 생생하다. 2천 년 전의 로마 이야기지만 여기의 현실감은 그대로 현대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그게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역사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늘 경계의 시각을 거둬서는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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