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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Oct 21. 2020

페르시아 전쟁과 9.11

톰 홀랜드의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전쟁, 즉 다리우스 1세와 크레르크세스의 두 차례에 걸친 그리스와의 전쟁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게 접해 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저술들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그 전쟁을 기술한다. 그러니까 그리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식이다. 그리고 페르시아는 덩치만 컸을 뿐 소수의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동맹군에 맥을 못 추었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전쟁을 페르시아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왜 그들은 그리스를 정복하고자 했을까? 단순한 과시욕, 정복욕일까? 또 그리스의 승리는 필연적인 것이었을까?


톰 홀랜드의 《페르시아 전쟁》은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그리스 정복 전쟁과 그에 대한 그리스의 응전을 매우 균형 잡힌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우선 이야기의 시작을 페르시아라는 왕국의 성립 과정부터 서술한다. 아스티아게스, 키루스를 거쳐 캄비세스까지 이른 아시아(여기서는 그냥 아시아라고 칭하지만 우리의 현대 감각으로는 중동)의 패권은 여섯 명의 동업자와 함께 전임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다리우스에 이른다. 그는 ‘왕 중의 왕’이었다. 바로 그 다리우스 1세가 바로 1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군은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 군을 물리친다. 


다리우스 이후는 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다. 그는 마리우스보다 더 큰 규모의 군대를 일으킨다. 육상군은 말할 것도 없이 페니키아인을 중심으로 한 함대도 전 그리스의 함대부터 몇 배나 컸다. 그리스는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는 테르모필라이에서 벌어진 스파르타군의 옥쇄였다. 영화 <300>의 소재가 된 이 전투(스파르타만의 전투는 아니었다)는 결과적으로는 그리스의 패배였지만, 너무나 극적이었기에 당시도, 지금도 사람들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당시 아테네는 페르시아군에 유린되었다. 주민들이 소개되고 아크로폴리스가 불타올랐다. 그리스군의 승리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이뤄졌다. 이른바 동양으로부터 서양을 구해낸 첫 전투라고 일컬어지는 해전이다. 크세르크세스는 그 전투 상황을 육상의 언덕에서 직접 지켜봤다고 한다. 전투의 결과를 보고 결국은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남아 있는 육상군도 결국엔 그리스 연합군에 패배를 당하고 2차 페르시아 전쟁이 끝을 맺게 된다. 


이상이 페르시아 전쟁의 경과인 셈인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협력과 알력, 배신과 경쟁 등이 정말 극적이었다. 페르시아라는 국가의 성립에 대해 정성을 다해 서술했듯이 톰 홀랜드는 아테네의 민주정의 성립 과정, 스파르타라는 군사국가의 성립 과정 등에도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달랐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이 자신들의 국가와 정체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에 대해서도 지면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들의 참주정에서 민주정으로의 전환은 의식의 고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불가피한 상황에서 벌어진 전환이었음에도 그 가치를 소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스파르타라는 도시 국가가 어떤 정신으로 전투에 임해 결국에 승리를 쟁취해 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쓰고 있다. 그들은 명예를 죽음보다 앞세웠고, 그랬기에 테르모필라이에서와 같은 역사에 남는 극적인 전투를 할 수 있었다. 톰 홀랜드는 전투에 대해서는 피가 튀기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길게 서술하지는 않지만(이런 건 시오노 나나미의 특기다), 그럼에도 군사들의 숨막히는 열기가 전해진다. 아마도 저자도 이 부분에서는 글 쓰기를 멈추지 않았을 듯하다. 그만큼 페르시아 전쟁의 전투들은 모두 극적이었다. 


이 책이 쓰인 것은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있고 난 후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그 사건을 단순한 테러라 보지 못한다. 문명사적 충돌. 그는 이 충돌의 전조를 2500년 전으로 소환한다. 그게 바로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기술했던 바로 그 전쟁. ‘서양(the West)’이라는 실체 자체도 존재하지 못했을 위기에서 서양은 살아남아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지만, 동양과 서양의 균열은 지속되었고, 9.11에 이르렀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는 그 전쟁으로부터의 서양의 존속이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본다. 그게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쓴,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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