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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역사를 다시 쓴 과학자들

데이비드 쾀멘의 『진화를 묻다』

by ENA

분자 데이터를 생물 분류에 적용하여 아케아(Archeae, 이 책에서는 ‘아르케이아’라고 읽고 있지만, ‘아케아’가 훨씬 익숙하다)의 존재를 발견하고, 3 영역(또는 도메인, Domain)이라는 새로운 분류 체계를 제안하고 확린한 칼 우즈(Carl Woese) (이 책에서는 워즈라고 쓰고 있지만 난 아무래도 우즈가 익숙하다). 내가 연구라는 걸 시작한 이래 한참 동안 그의 이름은 늘 주위를 맴돌았다. 그가 3 도메인을 최종적으로 제안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었지만(90년의 일이었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즈음이었고, 그가 시작한 16S rRNA 유전자를 이용한 생물 분류의 방법은 완전히 표준이 된 상황이었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는, 이제 막 대학원에 진입한, 어리바리 학생에게 그의 세계는 커다란 산, 혹은 불빛 같은 느낌이었다.


비록 일반 대중들은 그를 잘 모르지만(과학하는 사람들, 아니 생물학을 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생물학의 혁명가였다. 그러나 그의 업적에 관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글을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노벨상 후보로 몇 번 오르내렸지만, 줄 분야가 없어서(핑계일 수도 있다) 받지 못했던 탓도 있어서 그는 내부공생(endosymbiosis)설의 린 마굴리스보다도 덜 대중적이었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고, 그의 업적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도도의 노래』, 『인수 공통 모든 감염병의 열쇠』로 인상 깊은 데이비드 쾀멘이 드디어 칼 우즈에 대해서, 그리고 생물 분류와 진화에 관한 새로운 역사에 대해 썼다. 칼 우즈의 업적과 삶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그에게 이르기까지의 과학의 역사와 그와 협력하거나 경쟁, 배척했던 인물들을 주변에 배치했다.


우즈는 생물학에서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생물물리학자였고, 끝까지 자신은 생물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생물학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생물학에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만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프랜시스 크릭(맞다.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의 구조를 밝힌)이 지나가듯 제안한 분자 데이터를 분류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그 데이터와 분석을 토대로 지구의 생명체가 진핵생물(Eukaryotes)와 원핵생물(Prokaryotes)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원핵생물로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 Bacteria와 Arheae(우리나라 교과서는 각각 진정세균과 고세균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로,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런데 진정세균, 고세균이라는 번역은, 우즈가 알았으면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그는 맨처음 Archaebacteria라고 했던 것을 끝까지 후회했고, 그것을 정정하고자 무진 애를 썼다. 그에게 Archeae는 bacteria, 즉 세균이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생명의 세계를 넓혔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책의 또 다른 키워드는 ‘나무(Tree)’다. 나무는 생명의 진화를 상징한다. 다윈이 자신의 연구 노트에 그려놓은 몇 가닥의 선으로 이루어진 나무 그림이나, 『종의 기원』의 유일한 삽화(그래픽이라 해야 하나?)는 너무나 유명하다. 거기서부터 생명의 역사는 나무와 같이 분화하면서 풍부해진다는 개념을 심화시켜왔다. 그 이후 헤켈의 유명한 그림, 휘태커의 5계(Kingdom)를 제안했던 그림 등은 지금도 교과서에 등장한다. 우즈가 그린 나무도 유명하다(물론 3 도메인을 나타내는 계통수). 그런데 그런 흐름 가운데 이단이 흐름이 나타났다. 우선 린 마굴리스의 내부공생설로 수렴되는 발견이 있었다. 즉,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의 조상이 바로 세균이라는 것이다(린 마굴리스는 중심립이나 편모 같은 것도 세균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현재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내부공생설은 이제 정설이 되었다. 내부공생설은 생물이 수직적으로 서로 분화하기만 하지 않는다, 즉 나무로 그려지는 생명의 역사가 충분히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후로 수직적 유전자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 HGT)의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DNA가 유전자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로 알려진 그리피스나 에이버리의 폐렴구균 실험도 실은 그런 생명체 사이의 유전자 전달의 예이다.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수평적 유전자 전달 현상이 매우 흔한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생명의 역사는 나무가 아니라 ‘그물(web)’이라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토드 둘리틀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역사이다(내 입장에서만 본다면 가슴 뛰는 역사다). 생명에 관해서, 진화에 관해서 과학이 깊고, 넓은 시각을 만들어온 역사다. 그 가운데 협력도 있었고, 반목과 대립도 있었고, 또한 오류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과학은 길을 넓히고, 바른 길을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칼 우즈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그의 <Science>지 부고에는 honorary Nobel Prize 즉 명예노벨상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는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거나 조금이라도 자신의 업적을 낮추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배척했고, 나중에 다윈을 무시할 정도로 괴팍하게 변했지만, 그의 업적만큼은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다.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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