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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는 말야...

티모시 와인가드의 <모기>

by ENA

2018년 사람에 의해 죽은 사람의 수는 약 58만 명이었다고 한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다. 그런데 이 기록은 2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2위라면 과연 1위는 무엇일까? 바로 모기. 모기로 인해 죽은 사람의 수는 한 해 동안 83만 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 숫자도 사실 적게 본 숫자인 모양이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바로 그 빌 게이츠가 세운 재단이다)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매년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모기의 해의 사망한다. 모기와 사람 다음의 순위를 보면 뱀, 개, 모래파리, 체체파리, 자객벌레, 흡혈성 침노린재 등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모기는 역사상 가장 깜찍하면서 끔찍한 살인마였다.


약 1억 9천만 년 전쯤 지금과 동일한 겉모습을 한 모기가 지구상에 출현하였다. 암컷만 피를 얻기 위해 다른 동물을 물게 되는데, 암컷은 자기 몸무게의 3배의 피를 몸 속에 농축시켜 뱃속의 알들을 키운다. 목숨을 걸고 피를 얻고 새끼를 키우는 셈이다(아, 종족 번식 본능의 처절함이여!). 그런데 모기 자체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모기 자체만으로 보자면, 조금 따갑고 간지러울 따름이다. 모기가 위험한 건, 모기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나 세균, 바이러스 등이 피를 빠는 도중 사람이나 동물에게 전달되어 병을 일으키고 목숨까지 앗아가는 것이다. 모기는 죄가 없다(그래도 죄가 있다고 해야 하나?). 모기가 인간에게 옮기는 질병은 대략 열 다섯 가지 정도가 된다. 대표적으로 말라리아, 황열병, 뎅기열, 사상충 등이 대표적이고, 역사상,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이 질병으로 사망했고, 사망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 뇌염을 비롯하여 세인트루이스 뇌염, 이콰인 뇌염도 모기에 의해 감염되고, 최근에는 마야로, 웨스트나일, 지카 바이러스 같은 것이 모기와 관련되어 등장했다. 하지만 모든 모기가 그런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는 것은 아니다. 수천 종에 이르는 모기 종 중 위와 같은 질병을 옮기는 모기는 얼룩모늬모기, 숲모기 등에 속하는 수백 종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말라리아나 일본뇌염 정도이고, 이것도 그다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티모시 와인가드는 그런 모기가 인류 역사에 짙게 드리운 장막을 낱낱이 소개하고 있다. 아주 오랜 고대 시대부터, 역사가 기록된 그리스, 로마 시대, 그리고 중세를 넘어 근대의 여러 전쟁, 현대의 역사에 흐름을 바꾸어 놓은 모기들의 활약이다. 모기로 인해 전쟁의 흐름이 바뀐 사례는 어느 하나를 들 수 없을 만큼 허다하며, 따라서 모기로 인해 국가의 흥망성쇠마저도 좌우되고 했다는 것이 와인가드의 줄기찬 견해다. 마치 모기가 인류의 거의 모든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한 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것도 모기며, 그런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었던 원인도 모기였다. 매우 흥미로운 역사들이며, 또 모기(정확히는 모기에 의한 질병)로 인해 군대의 강건함이 급속도로 감퇴되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기에 대해 쓰겠다고 했으면 당연한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지나치다 싶을 만큼 모든 것을 모기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모기 탓이었다면 인간의 결정과 의지, 혹은 배경 등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물론 모기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배제해버리는 부분에서는 조금 아연한 느낌마저 든다.


사실 이 책을 접어들 때는 ‘모기에 관한 과학’을 생각했다. 물론 역사를 다루지 않지는 않겠지만, 직접 모기에 대해서, 또 모기가 일으키는 질병에 대해서 좀더 많은 분량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티모시 와인가드는 역사학자였다. 줄기차게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쓰고 있다. 물론 과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보다는 무척 얕고, 분량도 별로 없다. 역사만 줄기차게 쓰다 보니,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했는데, 무시무시한 모기 때문에 성공하거나 실패했다. 모기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의 이런 흐름인 셈이다. 그래서 대부분 말라리아 얘기에서 별로 벗어나지도 못한다. 거기에도 모기와 말라리아만으로는 이야기를 다 못 채울 수 밖에 없어서 모기나 모기 매개 질병에서 벗어난 얘기로 종종 빠지기도 한다. 그게 흥미롭지 않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책 표지에 제목이 여전히 ‘모기’인지를 살펴보게 한다.


말라리아, 황열병 등이 모기에 의한 것인지 밝혀진 것은 이제 150년도 되지 않는다. 퀴닌은 그래도 근대 이후 말라리아의 특효약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말라리아를 제대로 치료하는 약이 개발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모기를 없앨 수 있는 DDT가 개발되어 비로소 모기 매개 질병의 공포에서 다소나마 벗어난 것은 2차 세계대전 즈음부터이다. 그러나 DDT는 그 부정적 인상과 더불어 내성으로 인해 약효마저 떨어지고 있고, 지카와 같은 다른 모기 매개 질병이 인류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다. 크리스퍼(CRISPR)라고 하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조작 모기로 모기를 멸절시키고자 하는 시도까지 있을 정도로 모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골칫거리를 넘어서 큰 장애물이다. 이 책을 통해 모기와 맺어온 인류의 역사를 꼼꼼히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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