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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임!

앨리츠 로버츠의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by ENA

길들임은 길고도 오랜 진화적 과정이었다. 인류의 역사, 그리고 그 인류의 역사 속에 편입된 길들임의 역사는 진화적 시간으로 보자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길들임이라는 과정이 어느 한 지역에서, 어느 한 순간, 혹은 기간 동안에 완성된 상황이 아니란 점에서(즉, ‘사건’이 아니란 점에서), 그리고 인간의 의도가 강력하게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길고도 오랜 진화적 과정’이라는 표현을 인정할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한 길들임의 예(특히 동물의 경우)를 세 가지의 경로로 구분할 수 있다. 한 가지는 동물이 인간을 선택해서 자원을 빌려간 경로다. 이 경로에서는 동물의 접근이 길들임의 시초가 된 경우로 예로는 개와 닭을 들 수가 있다. 두 번째 경로로는 먹잇감 경로다. 이 경로에 대한 예로 들 수 있는 건 소인데, 초반에는 길들이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먹잇감으로 사냥하했지만, 이후에는 사냥감으로 관리되었고, 끝내는 가축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마지막은 의도적으로 인간이 잡아다 길들인 경우다. 말이 그런 경우다. 이렇게 여러 길들임의 경로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이 길들임의 경로에서 인간의 원치 않는 형질은 제거되고, 바람직하다고(물론 인간의 관점에서) 여겨지는 형질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의 길들여진 동물, 식물들은 전적으로 인간의 욕망이 철저히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길들여진 동물과 식물이 어느 시기에 어느 곳에서 길들여지기 시작했는지 고고학적인 증거와 더불어 최신의 유전학적인 증거를 통해 밝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패턴들은 서로 매우 유사하고, 또 흥미롭기도 하다. 우선 밝혀지는 과정이다. 고고학적인 증거로 보았을 때 어떤 지역의 어떤 야생종이 현재 길들여진 종의 조상이라는 것이 추론된다. 그리고 분자생물학적 도구가 처음 적용되었을 때, 그 고고학적인 추론을 검증하게 되는데, 그때 대체로 한 지역에서 길들임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러다 더 확실한 증거(이제는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의 유전체가 아니라 전체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이용한다)를 가지고, 더 많은 지역의 개체들, 또 과거 화석으로부터 DNA를 확보하여 연구하면 좀 다른 패턴이 나온다. 한 지역에서 야생종이 가축종으로 변한 것으로 맞지만, 그 이후 전파되는 과정에서 주변의 야생종과의 빈번한 교잡의 증거가 발견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이지는 않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예에서 이러한 연구 진행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의 유사성도 재미있기도 하고, 현재의 길들여진 종들이 야생종과의 교잡을 통해 새로운 형질을 획득해 가는 과정도 무척 흥미로운 얘기다.


우리는 여기 길들여진 동물과 식물에 정말 많은 것을 의지해 왔다. 만약 그것들이 가축화시키지 않았거나 경작하지 않았을 때 우리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제목의 ‘세상을 바꾼’이라는 전혀 독창적이지 않은 수식어가 전혀 그릇된 표현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인간의 의지가 작용한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을 보면, 인간이 지금까지 온 것이 참으로 우연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길들임의 역사를 보면서 한 가지 생각해야만 하는 교훈은, 야생종 보존의 중요성이다. 길들여지는 동식물이 야생종과의 교잡을 통해서 새로운 형질을 얻어갔듯이 그러한 과정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 아니 환경의 변화라든가 병원균에 의한 감염이라든가 하는 것으로 현재의 품종이 타격을 받을 때 그것들의 활로는 야생종에서 얻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재배의 기원, 가축화의 기원에 관한 유전학적 연구는 그저 흥미의 차원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연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유전자변형 동식물에 대해서도 또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보길 권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길들임의 역사는 좀 긴 기간 동안의 유전자변형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효소나 유전자 가위(CRISPR)를 이용한 것이 아닌, 선택적 교배라든가, 방사선 조사 등을 통해 새로운 품종의 개발은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지던 것이다. 물론 여러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저자는 조심스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논의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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