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날트 게르슈터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지금 우리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살 것이 분명하다. 그냥 수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등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어느 정도인지는 예측되지 않지만 분명히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질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예는 수도 없다. 질병 자체가 어떤 의식이 있어서 그런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질병의 창궐이 세계사의 흐름,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 예도 흔하고, 지도자의 질병이 그동안 예측되던 흐름을 바꾸어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 예는 더욱 흔하다. 비록 그것만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결정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예기다. 하지만 만약 그 상황에서 그 질병이 창궐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그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으리란 예상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질병은 역사의 주요 변수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역사에서 날씨의 변수를 추적했던(『날씨가 만든 그날의 세계사』) 로날트 게르슈터가 이번에는 질병의 변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질병이 역사를 바꾼 사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은 질병이 사회를 바꾼 경우다. 중세 유럽을 뒤흔들고 완전히 흐름을 바꾸어 놓은 페스트, 근대 초입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고 여겨지는(확실하지는 않지만) 매독, 소수의 정복자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한 천연두, 세계를 휩쓸고 역학(epidemiology)를 탄생시킨 콜레라, 1919년 전쟁과 함께 세계 인구를 급감시킨 스페인 독감, ‘아름다운 질병’으로도 불리었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결핵, 1980년대 이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이즈. 이런 것들이다. 하나같이 이 질병들은 한 사회를 휩쓸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사회의 구조를 바꾸어버렸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지금의 코로나 19가 바로 이 대열에 낄 게 분명하다.
다음은 한 개인의 질병이 세계사를 바꾼 경우다. 사실 이 경우는 앞의 것과는 달리 사회적인 해석이 아니라 역사의 가정과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호사가의 입에 오르는 경우인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여러 분분한 원인에 의해) 이른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다면?과 같은 것이다. 독일 슈타우펜 왕조의 종말로 이르게 된 프리드리히 2세의 죽음, 영국 여왕 메리 튜더의 상상 임신 등도 그런 경우에 포함된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의 경우, 그의 형인 로런스 워싱턴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심지어 그 아내와 아들이 이어 죽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개인의 질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경우의 하부 사례로 저자는 한 가지의 패턴을 중요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숨겼던 역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우드로 윌슨이 그랬고,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그랬으며, 성인 소아마비를 앓았고, 병을 달고 살았지만, 절대로 그런 질병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그랬고, 젊음의 상징으로 (잘못) 알려졌던 존 F. 케네디가 그랬다. 저자는 이런 지도자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속임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물론 그들의 질병을 밖으로 알리지 않은 데는 자신과 주변의 욕망이 역할을 했겠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가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히 알려지는 게 늘 옳지만은 않을 수 있다. 요즘 세상이 언제까지나 그런 비밀이 유지될 수 없긴 하지만. 무작정 그들이 속임수를 썼다며, 비판도 아니고 거의 ‘비난’할 꺼리는 아니지 않은가 싶다.
아무튼 질병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모른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사태에서 죽어서, 혹은 살아남아 역사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거다. 물론 그보다 확실한 건, 이 질병이 사회에 남겨놓는 흔적이다. 우리는 이겨내겠지만, 좀 다른 세상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