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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Oct 26. 2020

기독교는 어떻게 서구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나?

톰 홀랜드, 《도미니언》

책을 읽고 나서 우선 제목인 ‘도미니언(dominion)’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했다. 이 단어는 책에 자주 등장하는데(뒤로 갈수록 좀 더 빈번해진다), 거의 대부분 그 의미를 괄호 안에 넣고 있다. 어떤 하나의 의미로 설명하기가 곤란한, 혹은 여러 가지 의도를 가지고 썼다는 의미이다. 기독교가 탄생한 이래 사회 곳곳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독교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결론인데, 그냥 그걸 단순히 기독교의 ‘지배’라고 써버리고 해석하기에는 좀 더 복잡하고 깊은 사정이 있다는 뜻이고, 또 독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 책의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의 구조는 매우 규칙적이고 정리가 되어 있다. 일단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슬람 제국의 탄생》의 배경이 되는 시대, 즉 7세기까지 다루는 ‘고전고대(Antiquity)’, 기독교가 바야흐로 서구 세계의 지배적 정신이 된 시기부터 16세기 종교 개혁, 17세기 중국에 진출한 예수회 선교사까지 다룬 ‘기독교 세계(Christendom)’, 그리고 그 이후 근대 계몽주의부터 현대 비틀스와 이라크 전쟁 등까지를 다루는 ‘모데르니타스(Modernitas)’. 그 3개의 부는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다시 3개의 절(각각이 그 시대의 한 장면이다)로 나뉜다. 얼핏 봐도 ‘3’이라는 숫자가 많이 보이는데, 혹시 톰 홀랜드는 이 책을 구상하면서 ‘삼위일체’ 같은 것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정돈된 구성 때문에 어떤 부분도 늘어지지 않고, 서로서로 단단하게 얽혀 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이 책은 기독교가 바꾼 (서구) 세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톰 홀랜드는 이에 관해 “그 어떤 것도 기독교 역사의 결실이 아닌 것은 없었다.”(698쪽)고 쓰고 있다. 이렇게 단언해도 괜찮을까 싶은데, 그는 매우 꿋꿋이 밀고 나간다. ‘반(反)기독교’ 운동, 이념까지도 결국은 기독교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 운동도, 비틀스의 그것도 기독교적이라고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슬람교까지도 결국은 기독교를 바탕에 깔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정도다. 어쩌면 기독교 ‘환원주의’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원래부터 이 책은 기독교가 서구의 정신을 형성하고, 변화시켜 나간 과정을 탐구하기로 한 책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그런 면에서 톰 홀랜드도 ‘역설’, ‘아이러니’와 같은 말을 여러 차례 쓴다. 예를 들면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라는 기독교의 가르침 자체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 것이었고, 그런 허약함을 가르치는 종교가 정복의 상징,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것도 모순적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 사이의 신분과 계급을 옹호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런 것을 부정하는 듯도 기록 등과 같이 모순적인 가르침이 가득한 이 종교는,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 체제 수호를 위한 성(城,)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체제 전복의 빛이 되었다. 그렇게 기독교는 역사의 온갖 장면을 장식하면서 서구의 ‘정신’이 되었다. 


가장 관심이 가면서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3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프랑스혁명, 노예 폐지 운동, 마녀 사냥, 갈릴레오의 태양중심설, 다윈의 진화론, 공산주의와 소련, 제1차 세계대전, 나치즘 와 유대인 학살, 미국의 흑백차별과 민권운동,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비틀스, 유럽으로의 이민 물결, 이라크 전쟁 등 이 흥미진진하고, 하나하나가 특별한 역사 주제가 되는 장면들이 거침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모두 기독교가 서구 정신에 미친 영향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된다. 모두 긍정할 수 없다는 게 더 특별하게 읽을 수밖에 없도록 한다. 그러면서 다시 정독을 한다면 저자의 생각에 어떤 균열을 찾아 완벽히 반박할 수 있을까? 하는 욕심도 든다. 


거의 서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역사이지만, 기독교의 발흥 이후 2000년 역사의 장면들을 기독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기독교의 관점’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엔 그 이전에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이라는 관점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보았을 때 역사가 어떻게 해석되는지 이처럼 분명 해지는 경우도 없다. 또 이 책은 그렇게 보겠다는 것을 이미 선언하고 있다. 중립적이라고 하면서 매우 편협하게 해석하는 경우보다 훨씬 솔직하며 또한 유익하다. 이렇다면 물론 그런 실력을 가진 이가 있어야지 가능한 일이지만, 일단은 다른 시각에서,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 보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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