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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Oct 28. 2020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이언 매큐언, 《차일드 인 타임》

《차일드 인 타임》은 1987년도 작품이니 이언 메큐언의 초기 소설이다. 위키피디아를 보면(https://en.wikipedia.org/wiki/Ian_McEwan), 그의 커리어 초반을 《첫 사랑 마지막 의식》에서 이 소설까지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언 매큐언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문장은 《차일드 인 타임》에서도 여지없이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첫 사랑 마지막 의식》과 같은 충격적인 소재에 자극적인 묘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대가로서의 원숙함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야기는 성공한 아동문학가이자 아내와 딸을 둔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스티븐이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 순식간에 딸 케이트를 잃어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당연히 충격과 상실감에 허우적대고, 아내 줄리와도 별거 상태에 이르게 된다. 스티븐과 줄리가 그 충격과 상실감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이런 줄거리는 통속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매우 익숙하다. 그런데 이언 매큐언은 그 과정에 여러 이야기들을 배치하면서 단순히 아이를 잃고 상실감에 빠진 한 남자의 파멸만을, 그리고 극복에 대해 다루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선은 스티븐이 속한 정부위원회가 있다. 여기서는 아동 보육에 관한 논의를 하는데, 사실 거기서의 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미 결론은 내려진 상황이었고, 그것이 폭로된 이후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는 아동문학가로서의 성공을 이끌어준 (그리고 친구가 된) 출판업자이자, 결국은 정치가가 되어 내무차관까지 된 찰스와 그의 부인 (물리학자) 셀마가 있다. 찰스는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시골로 틀어박힌다. 아이로의 퇴행. 아이의 삶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현실을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그에 반해 스티븐은 환상(자신의 탄생과 관련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를 들여다본다)을 겪으면서, 또한 트럭의 사고를 직접 목격하면서 시간의 상대성을 인식하고 현실을 붙들어가게 된다(아랍어를 배우고, 테니스를 하는 게 바로 그 현실로의 귀환인 셈이다). 


결국 스티븐과 줄리는 케이트의 부재(죽음이 아니라)를 인정하고, 아이를 얻는다. 끝까지 딸의 부재는 그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주고, 잊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서로에게 위안을 주면서. 


이 소설을 감히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딸은 찾지를 못했고, 친구는 죽었으며, 정부위원회의 일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래도 살아간다.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이지만, 기댈 수 있는 가지 하나만 있더라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슬프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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