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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Oct 29. 2020

스파이의 아찔한 사랑, 그리고...

이언 매큐언, 《스위트 투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 초반의 아주 좁은 시간대의 영국정보기관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룬다냉전의 절정기를 향해 치닫기 시작하는 시기다그런데 이미 공식적으로는 해체된 냉전 시기의 정보기관에서의 얘기를 21세기에 하는 거지소설 스위트 투스에 대한 궁금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스토리가 단순하지 않다는 얘기다어쨌든 스파이 얘기이니 속임수가 난무할 것이고그러니 마지막에 무언가 !’하고 반전이 기다린다는 얘기다우리는 끝을 미리 읽지 말아야 한다작품 설명(다행히도 옮긴이의 말 같은 게 없다)도 미리 읽지 말아야 한다그래야 이 소설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스위트 투스는 1970년대 초반영국정보기관이 반공산주의 작가 포섭을 목적으로 한 작전의 명칭이다그리고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세리나 프룸은 그 작전을 수행한가장 하부 조직원이었다공작기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력을 가진 그녀가 M15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모순이었고그래서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실패해도 가장 무해한 일이었다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공작원(소설가)과 사랑에 빠진다그러니 소설은 스파이 소설이자사랑 이야기인 셈이다스파이로서의 임무를 위해 사랑하는 이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다말하자면 톰 헤일리를 포섭하는 것도그가 소설을 쓰게 하는 것도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모두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 되어 버린다그리고 반전. 21세기에 공개된 이 소설은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자폭로인 셈인데또한 톰 헤일리가 쓴 것이기도 하고세리나가 쓴 것이기도 하다(사실 그게 참 묘하고궁금하다).

 

이 소설은 영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인카운터라는 잡지가 미국 CIA의 자금으로 운영되었던 것이 폭로되었던 사건인데어쩌면 그게 폭로되는 게 사건이지 냉전 시기에 매우 보편적인 공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이언 매큐언은 여기에 사랑 이야기를 넣었고(매우 통속적이랄 수도 있게그러나 그래야 소설이 되고 재미가 생긴다), 극적인 반전을 넣었다반전 자체야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었지만이 소설 자체가 소설 속의 소설가가그리고 스파이의 소설이라는 설정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이언 매큐언에겐 냉전의 대립을 소재로 한 소설이 또 있다이노센트이노센트에 비해 스위트 투스가 작전의 무게라든가사랑의 절박성 같은 면에서는 조금 가벼워 보이지만자신의 전문 분야즉 글쓰기라는 창조적이고자유로움을 전제로 하는 분야에 침투하는 정보기관의 작전과 조작에 대한 폭로는 비록 이미 한 세대 전의 이야기이지만결코 낡은 이야기는 아니다그래서 이노센트보다 현재성을 갖추고 있지 않나 싶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그 문장의 정교함에 대해서 감탄을 하곤 했는데(이 소설이라고 그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소설에서는 소설 구조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전체 소설 자체가 메타적이고소설 속에 여러 소설이 들어 있다말하자면 여러 층위를 갖추 메타 소설인 셈인데소설 하나를 쓰면서 실제로는 여러 소설을 써야 했다는 얘기다어쩌면 소설집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궁금한 것은 세리나와 톰은 결국은 어찌 되었을까 하는 것인데나는 좀 동화스럽게도 그들이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고한참 나이가 들어 이 소설을 내놓았다는 식으로 맺고 싶은어쩌면 유치스런 결말을 상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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