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 《스위트 투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 초반의 아주 좁은 시간대의 영국정보기관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룬다? 냉전의 절정기를 향해 치닫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런데 이미 공식적으로는 해체된 냉전 시기의 정보기관에서의 얘기를 21세기에 하는 거지? 소설 《스위트 투스》에 대한 궁금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스토리가 단순하지 않다는 얘기다. 어쨌든 스파이 얘기이니 속임수가 난무할 것이고, 그러니 마지막에 무언가 ‘꽝!’하고 반전이 기다린다는 얘기다. 우리는 끝을 미리 읽지 말아야 한다. 작품 설명(다행히도 옮긴이의 말 같은 게 없다)도 미리 읽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이 소설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스위트 투스’는 1970년대 초반, 영국정보기관이 반공산주의 작가 포섭을 목적으로 한 작전의 명칭이다. 그리고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세리나 프룸은 그 작전을 수행한, 가장 하부 조직원이었다. 공작기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력을 가진 그녀가 M15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모순이었고, 그래서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실패해도 가장 무해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공작원(소설가)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니 소설은 스파이 소설이자, 사랑 이야기인 셈이다. 스파이로서의 임무를 위해 사랑하는 이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톰 헤일리를 포섭하는 것도, 그가 소설을 쓰게 하는 것도,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모두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반전. 21세기에 공개된 이 소설은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자, 폭로인 셈인데, 또한 톰 헤일리가 쓴 것이기도 하고, 세리나가 쓴 것이기도 하다(사실 그게 참 묘하고, 궁금하다).
이 소설은 영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인카운터》라는 잡지가 미국 CIA의 자금으로 운영되었던 것이 폭로되었던 사건인데, 어쩌면 그게 폭로되는 게 사건이지 냉전 시기에 매우 보편적인 공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언 매큐언은 여기에 사랑 이야기를 넣었고(매우 통속적이랄 수도 있게. 그러나 그래야 소설이 되고 재미가 생긴다), 극적인 반전을 넣었다. 반전 자체야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었지만, 이 소설 자체가 소설 속의 소설가가, 그리고 스파이의 소설이라는 설정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이언 매큐언에겐 냉전의 대립을 소재로 한 소설이 또 있다. 《이노센트》. 《이노센트》에 비해 《스위트 투스》가 작전의 무게라든가, 사랑의 절박성 같은 면에서는 조금 가벼워 보이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 즉 글쓰기라는 창조적이고, 자유로움을 전제로 하는 분야에 침투하는 정보기관의 작전과 조작에 대한 폭로는 비록 이미 한 세대 전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낡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이노센트》보다 현재성을 갖추고 있지 않나 싶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그 문장의 정교함에 대해서 감탄을 하곤 했는데(이 소설이라고 그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소설에서는 소설 구조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전체 소설 자체가 메타적이고, 소설 속에 여러 소설이 들어 있다. 말하자면 여러 층위를 갖추 메타 소설인 셈인데, 소설 하나를 쓰면서 실제로는 여러 소설을 써야 했다는 얘기다. 어쩌면 소설집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궁금한 것은 세리나와 톰은 결국은 어찌 되었을까 하는 것인데, 나는 좀 동화스럽게도 그들이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고, 한참 나이가 들어 이 소설을 내놓았다는 식으로 맺고 싶은, 어쩌면 유치스런 결말을 상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