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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01. 2020

바보짓도 용서받을 수 있었던 시절

히가시노 게이고, 《그 시절 우리는 바보였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창 시설 이야기. 간단히 이 책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면 그 학창 시절은 특별한가? 그렇지 않다. 제목이 ‘우리는’이라는 것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초등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의 학창 시절에 관한 에피소드들은 그 시대의 일본인이라면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다. 


불량 학생들이 몰려 있는 학교, 학급을 경험한 이들도 많은 것이고, 괴수 영화에 환호했던 어린 시절 경험을 가진 이들은 더 많을 것이고, 이소룡의 영화에 흉내내기 바빴던 청춘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흔했다. 입시에 대한 경험이야 당연히 동아시아에서는 공통된 것일 수밖에 없고. 좀 심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여학생을 향한 장난이나, 성적 호기심도 특별할 수는 없다. 


좀 특별하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가 성적이 그 모양이었다는 것, 아니 그보다도 특히 국어 성적이 아주 별로였다는 것 정도일까? 그가 오사카의 공대를 나왔다는 것이나 학창 시절 이런저런 운동부에 속했다는 것, 그리고 스키 매니아라는 것 정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좀 읽은 이라면 익히 알려진 정보일 터이다. 더군다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창 시절의 경험은 일본이라는 지역, 시대적인 상황으로 내게는 적지 않은 이질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물론 다른 어떤 곳보다는 일본의 상황이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러면 이 책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 개인의 삶과 역사가 이어져 온 경로를 생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통해서는 내 삶의 궤적 중에서도 가장 어리숙하고, 가장 괴롭고, 가장 실수가 많았지만, 가장 힘찼고, 가장 빛났던 시절을 회상할 수가 있다. 


무엇도 할 수 없었던 것 같지만, 또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시절. 바삐 어른이 되고 싶었고, 또 어른이 되는 것에 반항했던 시절. 시험 한 문제에 울고 웃었지만, 시험 성적과는 상관없이 어울릴 수 있었고, 뛰어놀 수 있었던 시절. 바보짓도 용서받을 수 있었던 시절. 분노와 좌절이 힘이 될 수 있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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